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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류작가 강은영 Jun 07. 2021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

영혼들의 여행

간혹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 보면 주인공이 자고 일어났더니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고 주변의 상황은 예전과 똑같이 흘러간다. 새롭게 주어진 기회에 주인공은 이전과 다른 선택을 하고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그런 결말이 펼쳐진다. 타임 슬립(time slip),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시간 여행이라고 불리는 이 소재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돌이킬 수도 없고 예견할 수도 없는 우리네 삶 때문일 것이다.   


해마다 이맘때쯤 유난히 더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겨우 73일 동안 이 세상에 머물다가 하늘의 별이 된 아이, 민성이. 아무리 인생이 짧다지만 너무나 순식간에 스치고 지나가 버린 인연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마음 한 자락에 슬픔과 안타까움으로 뒤엉켜 있다. 그리고 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처음 겪는 혈육의 죽음이자 상상조차 못 해본 이별이었다. 그날 이후로 '내 삶에서 단 한 번의 타임 슬립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떨까?' 종종 상상해본다. 그럼 주저 없이 11년 전의 6월을 선택할 것이다. 당시에는 최선이었지만 지금 보면 잘못된 선택들을 바로 잡고 어떻게든 아이의 죽음과 원치 않는 이별을 막아내야 할 테니까.


하지만 수없이 벌어지는 예기치 못한 죽음과 뜻하지 않는 이별을 볼 때면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아이를 살려내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죽음을 받아들이기에는 삶과 죽음이 정해진 운명대로 흘러간다고 보는 것이 현명할 터. 짧은 생을 타고나 엄마 품에 한번 안겨보지도 못하고 떠난 아이의 운명을 내 힘으로 바꿀 수 있을까?




최근 벌어진 한강 대학생 사건 기사를 접하면서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음모론은 차치하더라도 남부럽지 않게 잘 키워 놓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과 느닷없이 생이별을 당한 그 부모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였다. 정민 군도 정해진 삶을 살고 운명대로 떠난 것일까? 아들의 죽음에 의문을 가진 채 남겨진 부모는 어찌 살아갈 수 있을까? 아무 상관없는 나조차도 가슴이 답답하고 잠을 설칠 지경인데 부모의 심정은 감히 헤아릴 수도 없을 것 같다.   


인간은 이 지구 상에 태어남으로써 만남이 시작되고 죽음으로써 이별을 맞이한다. 재미있는 점은 삶의 주인공인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지만 인생의 시작인 탄생과 끝인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거나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부모를 선택하거나 성별을 정할 수도, 죽을 날을 정해 놓지도 못하고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살다 간다. 


<영혼들의 여행>이라는 책에서는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 영혼의 상태에서 어느 곳에서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나고 어떤 모습으로 살다가 죽을지 정해 놓는다고 한다. 즉 영혼들이 매번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다가 다시 영혼의 세계로 돌아오는 과정을 거치며 영적 성장을 이룬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삶이 있는 동안에는 인지하지 못할 뿐, 태어나기 전에 이미 내가 정해 놓은 삶을 살고 있다는 얘기다.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뉴턴 박사는 국제적인 명성을 지닌 심리학자이다. 나는 민성이를 떠나보내고 나서 이 책으로 엄청난 위안을 받았다. 그 어떤 것도 그 누구의 위로도 도움이 되지 않던 때에 영혼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여행을 하러 지구에 잠시 들른다는 이야기는 아들의 탄생과 죽음, 우리의 만남과 이별에 대한 얽히고설킨 고뇌와 감정들을 정리해주었다. 


보통의 인간은 몇십 년을 살아야 여행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고 되돌아 갈 수 있다. 하지만 짧은 생을 살다 간 사람들은 그 시간으로도 충분한 여행이 되는 것이다. 못다 한 인연은 남겨진 사람의 몫일뿐. 돌이켜보면 73일이라는 시간은 당시 내가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일 만한 최소한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때 썼던 일기를 보면 집착을 내려놓고 마음을 많이 비웠을 때 아이가 떠난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자신의 역할이 끝났으니 미련 없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간 것이리라.


            


나는 운명론자는 아니다. 하지만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이 이상으로 마음을 편하게 해 준 것은 없었다. 심지어 나는 종교도 없는데 민성이와 영혼이 연결된 느낌을 종종 받곤 한다. 아직 이 아이가 남겨준 것을 다 깨닫지 못했지만 나도 여행을 끝마칠 때쯤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그걸 깨닫는다면 어쩌면 다른 생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부디 그럴 수 있기를



저는 <일류 두뇌>와 <당신의 뇌를 바꿔드립니다> 저자인 일류작가 강은영입니다.

세 번째 책으로 장애아인 둘째 양육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올해 안에 발간하는 것이 목표인데 글이 잘 써지지 않아 편안하게 브런치에 초고를 연재하려고 합니다. 

초고니까 자주 수정이 될 것 같아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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