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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류작가 강은영 Jul 23. 2021

어떤 죽음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 하나

한참을 바라보니 내게 속삭인다   

 

나는 잘 지내고 있어요

그래, 다행이구나    


별과 나의 거리만큼

그보다 더 멀리

닿을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너    


찰나 같은 만남 뒤에 

겹겹이 쌓인 영겁의 그리움     


다시 태어난다면

네가 사는 그곳에서

우리의 못다 한 인연을 이어가기를    


오늘 밤에도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다    

      



둘째를 임신하고 처음 병원에 갔을 때 쌍둥이라는 말을 들었다. 너무 깜짝 놀라서 임신 소식을 양가 부모님께 전해 드렸다. 그러자 시어머니께서 “내가 꿈을 꿨는데 뱀 두 마리가 집안에 들어와 있었어. 그게 태몽이었네.”라고 말씀하셨다. 아직 당황스러운 나와 달리 양가 어머니들은 아주 기뻐하셨다. 첫째가 아들이니 딸이면 더 좋겠다는 말씀과 함께.


시간이 흐르자 나는 마음의 안정을 찾았고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첫째와 터울이 있어서 쌍둥이 키우기가 그리 힘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부자가 된 느낌도 들었다. 두 번에 할 고생을 한 번에 몰아서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최대한 빨리 받아들여야 마인드 컨트롤이 잘 된다. 


초기에 입덧을 하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둘째의 임신 기간은 생각보다 훨씬 더 수월했다. 정밀 검사에서도 이상이 없었고 첫째 때의 순산 경험이 있으니 자연분만을 하자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모든 것은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났는데 아랫배가 심하게 당겼다. 아무리 자세를 바꾸고 호흡을 하고 체조를 해보아도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고 급기야는 걷지도 못해서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실려 갔다. 그곳에서 들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야기. 양수과다증으로 인해 자궁문이 조금 열렸다는 것이다. 이제 겨우 26주밖에 되지 않아 위험한 상황이었다.


당시 남편이 청주비행단에 근무할 때인데 산부인과에서는 서울 대학병원으로 갈지 대전으로  갈지 물었고 남편과 나는 가까운 대전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 결정은 내 평생에 가장 큰 후회로 남는다. ‘그때 서울에 있는 더 큰 병원으로 갔더라면’ 하고 수천 번, 수만 번 가슴을 치고 후회를 했었다.


다시 구급차를 타고 대전에 있는 대학병원에 가서 급하게 입원을 했다. 남편은 날 입원시켜 놓고 5살인 첫째를 멀리 전라도에 있는 친정에 데려다줬다. 나는 그동안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만 생각했는데 그 먼 거리를 오가고 곧바로 출근해서 전투기 조종까지 해야 했던 남편이 얼마나 고생했을지 떠올리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입원해서 몇 주를 더 버티고 아이들이 위험하다 하여 29주 3일 만에 응급 수술을 하게 되었다. 얼마나 위급했냐면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남편이 오기도 전에 마취하고 수술에 들어갔다. 홀로 수술을 기다리면서 나는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공포를 온몸으로 느꼈다. 며칠째 양수과다로 배와 허리가 아파 잠을 거의 못 잔 상태여서 잠들면 깨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나를 덮쳤다. 남편이 손을 잡아 주었다면, 따뜻한 목소리로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해주었다면 좋았을텐데 야속하게도 그 시간마저 허락되지 않았다.  


다행히 수술은 안전하게 끝이 났고 그렇게 예정보다 11주나 일찍 세상의 빛을 본 쌍둥이는 태어난 순간부터 삶을 위한 투쟁을 해 나갔다. 1kg도 안 되었던 막내는 몇 번의 수술까지 받았다. 사람의 형체를 띤 지 열 달도 안 된 그 작은 생명체가 태어나자마자 죽음과 싸워야 했다니...어쩌면 수술 전에 느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이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죽음의 그림자가 아이를 덮칠 때마다 나는 무서웠고 숨길이 막힐 정도로 아팠고 기도밖에 할 수 없는 내가 싫었다.

   


자식의 죽음, 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아이를 가슴에 묻지도 못한 채 다시 돌려달라며 애꿎은 하늘만 원망했다. 설마했던 아이의 죽음이 현실로 닥쳤을 때 나의 무력함과 나약함이 견딜 수 없었고 세상 만사가 다 싫어졌다. 나는 이런 고통을 견딜 만큼 강한 사람도 아니고 이런 슬픔을 겪을 만큼 나쁜 짓을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아무리 하늘을 원망해도 세상은 잘만 굴러갔고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아무 일 없는 듯이 사는 것도 끔찍했다.


이후로 죽음에 대한 생각도 완전히 바뀌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은 한 톨도 없었지만 어차피 죽으면 소용없는 걸 뭣 하러 그렇게 애를 쓰며 사는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죽음이 두렵기보다 더 가깝게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삶에 그다지 미련이 없어진 걸 수도 있다. 죽음이 삶의 끝은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죽음 이후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아이가 떠나고 한참 후에 시어머니가 놀라운 말씀을 하셨다. 어쩐지 태몽이 좀 이상했다고 뱀이 두 마리인데 꼭 한 마리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애초에 그리 떠날 운명이었던 걸까? 죽음은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일까? 살아서는 얻지 못할 답을 오늘도 생각한다. 죽으면 그토록 그립고 그리운 널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진실로 죽음이 두렵지 않다.



저는 <일류 두뇌>와 <당신의 뇌를 바꿔드립니다> 저자인 일류작가 강은영입니다.

세 번째 책으로 장애아인 둘째 양육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올해 안에 발간하는 것이 목표인데 글이 잘 써지지 않아 편안하게 브런치에 초고를 연재하려고 합니다. 

초고니까 자주 수정이 될 것 같아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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