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제약회사 직장인 성장기
조금 더 업무와 관련해서 자세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제약회사 영업의 경우에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을 텐데 이해하기 쉽게 간추려서 말하자면 병원을 규모로 나눠 우리가 감기 걸릴 때 이비인후과나 내과를 방문하는데 이런 동네 병원 규모를 1차,
흔히 많이 아는 대학병원 규모를 3차,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몇개의 과가 같이 있으며 규모가 크지만 대학병원급은 아닌 곳을 2차라고 대충 퉁쳐서 보자.
영업 사원의 실적 평가는 어떻게 이뤄질 수 있을까?
3차 병원을 담당하는 영업 기준으로, 병원에서 직접 약물 별 처방 현황을 받기는 어려우니(어둠의 경로.. 친분의 경로 등을 제외하고) 원내 약국/ 문전 약국으로 주문을 받고 납품 되는 도매상의 자료를 활용하여 추산하게 된다.
문제는 도매상 자료는 100% 정확한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추산하는 것이며 만약 도매상이 또 도매로 넘기는 흔히 말하는 '도도매'가 발생하게 되면, 더더군다나 실적이 불분명해진다.
불분명한 실적인 영업사원에게 치명적이다.
Incentive를 받을 때도 불리하지만 더 큰 문제는 매월 실적 회의 때 타겟이 되어 탈탈 털릴 수 있다.
탈탈 털리는 것은 가뜩이나 졸아든 내 마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영업을 할 때, 담당 병원 중 하나가 정말 실적인 안나오는 곳이 있었다. 아무리 안 되어도 이정도는 나와줘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알 수가 없었다. 내 딴에는 도도매가 아니면 설명이 안되는 것 같았다.
나는 패기로운 신입이지 않나?
용기를 갖고 어디서 또 주워들은 얘기는 있어서 문전 약국에 들어가며 매월 어느정도 조제가 되는지를 물어봤다가 혼쭐이 나서 쫓겨났다.
하지만 굴하지 않았다. 뭐 이걸 반드시 알아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탈곡기에 탈탈 털리는 내 멘탈을 보호하고 싶었다. 나도 명확하게 이러이러해서 안 나오는 거다! 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결국 고심하다가 사내 인트라넷에서 확인할 수 있는 병원별 추정 실적 그래프를 핸드폰에 고이 띄워 담당 교수와 면담을 하다가 직접 물어봤다. 앞에 이 질문을 하기 위한 수많은 밑밥이 있었지만, 대화의 말미에 나는 기어코 질문을 던진다.
"교수님, 그런데.. 정말 이상한데 이 병원에 실적이 안잡혀요 보세요, 왜그럴까요?"
화를 넘어선 당황의 낯 빛. 까칠하기로 유명한 사람의 얼굴에 까칠함으로는 해결 되지 않을 것 같은 초짜중의 초짜라고 생각했는지 어이 없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
"OO씨, 진짜 어디 가서 이렇게 질문하면 큰일나요 하하하하하하"
'다시는 이렇게는 질문하지 말아야지'하고 다짐하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날 이후 신기한 일 두 가지가 생겼다.
1.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일일 보고를 하고 나니 더 이상 소장님이 해당 병원의 매출 현황에 대해 탈곡기를 돌리지 않으셨다.
2. 정말 신기하게, 그 병원 매출이 올랐다. 아니, 도도매를 멈춘 것일까? 아니면 내 질문이 정곡을 찔렀던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