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차]9. 동생이랑 같이 먹어
가족 같은 회사.. 이런 느낌인 건가?
가족 같은 회사.
지금은 아마도 이런 표현을 긍정적인 의미로 쓰는 경우가 거의 없을 것이다.
서로를 가족같이 여기는 회사라는 의미로 출발했을 표현이 어느샌가
가 V 족같은... 즉 뭣 같은 회사의 의미로 퇴색되었다.
물론 나도 정말 그 이상향의 끝에 있는 '가족 같은 회사'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다.
어떻게 회사가 가족 같겠는가.
단지 나는 회사의 월급을 받으며 내 몫을 해 내고, 다른 동료들도 나와 같은 입장일 뿐이다.
고용주는 고용주일 뿐 끊임없는 내리사랑을 주는 엄마와 아빠가 될 수는 없으며, 내 Line manager도 결국은 본인의 이익이 최우선 되는 모두 같은 처지의 인간일 뿐이다.
그렇지만, 팍팍한 하루하루 속에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찰나의 순간은 있다.
나에게 6살 어린 동생이 있으며, 동생이 작년 대입에 실패하고 재수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정도의 개인사는 팀원들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 사실은 특별할 이유도 없고 (대입을 앞둔 가족, 재수를 하는 가족이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많은가) 나도 이 사실을 사내에서 사적인 대화를 할 때 상기시키지는 않았다.
영업부는 매일 사무실에 출근해서 같이 얼굴을 맞대고 일하는 사이가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각개전투를 벌이기 때문에 출근하는 날은 꼭 점심을 같이 먹고, 종일 사내에서 일정이 있는(전사 교육 등) 경우에는 꼭 같은 팀끼리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여느 때와 같이 전사 교육을 받고 저녁을 함께 먹고 나서, 2차로 치맥을 먹으러 갔다. 나는 술을 잘 못하기도 했고 2차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2년 차에 접어들며 내가 싫어하는 것도 해야 한다는 것 정도의 사리분별은 되었기 때문에 아무 말 없이 치킨집에 따라갔다.
재미없는 아저씨들의 대화에 의미 없는 형식적인 반응들을 하며 피곤이 참지 못할 정도까지 올라오는 시점에 다행히 자리가 마무리되었다.
집으로 가기 위해 가게를 나서는 나의 손에 소장님이 치킨 한 마리를 쥐어주셨다.
"가져가서 공부하느라 고생하는 XX랑(동생) 먹어"
순간, 아, 회사 생활을 하면서 팀원이 가족 같이 느껴지는 순간이 이런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1.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는 것
2. '나'도 아닌 '내 동생'을 챙겨준다는 것
3. 내 동생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
집에 와 동생에게 안겨준 치킨은 소장님의 마음만큼이나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