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차]2.저는 제가 갈 자신이 있어요!
세상이 나를 억까하는 기분이 든다.
매년 회사에서는 마케팅 직원 1, 2명을 필리핀으로 한 달간 어학연수를 보내줬었다.
5년 차가 된 나는 그 기회를 무척이나 탐냈다.
어떤 기준으로 어학연수를 보내는지 알고 싶었다.
내가 어떤 조건을 충족하면 그 연수를 갈 수 있는 자격이 되는지 궁금했다.
문의를 했지만 두루뭉술슬한 대답이 돌아왔다.
전년도 평가와, 업무 능력, 현재 영어 실력도 높아야 1달을 가는 연수의 효과를 볼 수 있으니 세 가지 정도를 종합적으로 본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누가 연수 대상인지 발표가 나기 전, 마케팅 부서장과 면담을 요청했다.
내가 그 연수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부서장과의 면담을 진행하면서 나는 다시 한번 회사에 실망감을 느꼈다.
다시 한번 부서장에게 연수자 선정 기준에 대해 물었고,
대답은 같았다.
나는 좀 더 구체적으로 질문했다.
전년도 평가가 좋았고 (연수를 다녀오지 않은 마케팅 PM들을 봤을 때 동일한 평가를 받은 것으로 파악했다)
현재 영어 실력은 그중에 내가 제일 자신 있었고,
업무 능력이 수치화하기 어려운데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어떤 항목을 평가하는지 질문했다.
그런데 대답이 이상했다.
"아니 근데.... 이번에는 전 PM이 가야지.. "
전 PM은, 같은 시기에 마케팅에 발령받은, 영업부에 5년 정도 있었기 때문에, 전체 연차는 나보다 높은 선배였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다시 질문했다.
내가 자만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업무 능력 측면에서는 내가 더 나았고, 주변의 평가도 그러했다.
"그럼 업무 능력 측면을 보시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까요?"
당황한 부서장은 말끝을 흐렸다.
"아니 그게 아니고.."
"저는 제가 갈 자신 있습니다"
너무 당돌하고 직설적인 대답은, 상대의 거짓말을 무력화시키는 것일까
"아니.. 홍 PM은, 얼마든지 앞으로 갈 수 있지만, 전 PM은 이번이 아니면 못가"
실망스러웠다.
고작 부하 직원을 설득한다는 말이, 너는 언제든 갈 수 있잖아라니..
아예 선발 기준에 '연차 고려'라고 기술을 하거나
아니면 어떤 부분에서 내가 부족해 보이는지를 성의껏 설명하려는 노력이라도 보이던지..
폭행 사건에 실망감이 가시기도 전에 다시 한번 회사에 실망감을 느꼈다.
'이곳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로 번번이 내가 눈앞에서 기회를 놓치는 일이 많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조용한 이직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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