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차]5.내가 포기한 또 한 번 부서 이동 기회,
의학부로 와서 일해보지 않을래?
정신없이 논문을 마무리하고 있을 시점이었다.
사내 폭행 사건을 시작으로 점차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 흐려지고,
이직에 대한 생각이 샘솟기 시작했을 때였다.
마음속으로 논문을 마무리하고부터는 이직을 알아봐야겠다고 다짐해 오던 찰나,
어느 날 새롭게 회사에 합류한 의학부 팀장님이 나와 커피를 한 잔 하자고 했다.
'왜 날 보자고 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학부 팀장과 마케팅 PM이 직접적으로 일 할 접점은 거의 없었고, 내가 담당하는 제품을 담당하는 의학부 직원과 내가 업무를 함께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으신 팀장이라 그냥 좀 젊은 직원들과도 다양하게 소통하고 싶은가 보다는 생각으로 사주시는 커피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MSL 직무를 해보지 않을래요?" (의학부로의 이동을 의미했다)
뜻밖이었다. 약사출신들로 대부분 구성되어 있는 의학부에 생명공학이나 관련된 전공 지식이 없는 내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는 나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을 서슴지 않아한다.
내가 다른 MSL (의학부 직원을 Medical Science Lieson, 줄여서 MSL이라 한다) 보다 영어를 잘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논문을 많이 읽고 깊이 있는 의학적 communicatoin이 필요한 직무인데, 논문을 읽는데 영어를 잘하는 것이 도움은 될 수도 있었겠지만, 의학적 communication은 다른 문제였다.
단순히 약물의 의학적, 약학적 특징을 commerical 한 메시지로 연결하는 것과, 정말 의학적인 communication을 고객과 이어나가는 것은 다른 영역이며, 다른 역량이 요구된다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그 회사에 계속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면, 어쩌면 MSL 직무 제안을 수락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있던 팀에서는 폭행 가해자인 영업 소장과 계속 마주해야 하지, 연공서열로 대부분의 것들을 처리하는 모양새에 넌덜머리가 난 상태에서 보직을 변경하는 것은 어쩌면 새로운 시작을 해 볼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순간의 감정이나 혹은 현실에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선택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제약 마케팅이 재밌었다.
그리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했고, 잘해 내고 싶었다.
먼 훗날, 더 높은 자리로 가기 위해서 MSL 경험이 필요하다면 해 볼 수 있지만
그때의 나에게 필요한 것은 다양한 직무 경험이 아니라, 마케터로서 다양한 제품, 질환, 업무 경험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고민 없이 거절했다.
"팀장님, 좋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드리지만, 저는 마케터로 좀 더 전문성을 쌓아보고 싶습니다"
어떤 기회는 내가 죽을힘을 다해도 내 앞에 뒤통수조차 보여주지 않지만
어떤 기회들은 생각지도 않게 내 앞에 어느 날 떡 하니 나타난다.
무엇을 기다릴지, 무엇을 잡을지 선택하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이다.
그리고 나는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묵묵히 질뿐.
Brunch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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