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나는
엄마와 전농동의 다세대 반지하에 살았지
나무로 된 방문을 열면 바로 단칸방이 나왔고
그것이 현관문이자 방문이었지
새벽에도 일어나 하수구 배수펌프를
수시로 돌리지 않으면 하수가 역류했고
온 방안에 똥물과 똥냄새가 차는 집
화장실도 밖에 있는 푸세식 집
그런 우리 집에 설마 하고
생각지 못한 손님이 다녀갔지
외출했다 집에 돌아온 어느 날
분명 잠그고 나간 문손잡이가
그냥 쉽게 돌려졌고 문을 열자마자
바로 누군가 다녀갔음을 눈치챘지
발바닥이 잠길 정도의 물이
부엌과 방바닥에 차 있었고
싱크대 수도꼭지가 틀어져 있었고
배수구는 행주로 막혀있었지
서랍장 나무가 검게 젖었고
장판 아래에도 물이 차 있었지
벼룩의 간을 내먹지
정말 내먹는 사람이 있구나
훔쳐갈 것 없다고 자부하는 방이라
아무것도 훔쳐가지 못한 줄 알았는데
오히려 불쌍한 우리 집을 봤으면
살림 좀 도와주고 갔어야지
그냥 가다니 괘씸하다 생각했어
밤늦게 집에 돌아온 엄마가
도둑이 든 것 같다는 내 말에
서랍장에 숨겨놓은 금가락지를 찾아보더니
없어졌다며 한탄했지
참 구석구석도 뒤져갔구나
거지 같은 우리 집에도
뜻 밖에 훔쳐갈 게 있었구나
그날 이후 나는
문을 닫고 잠그고 흔들어보고 당겨보고
다시 열고 닫고 잠그고 흔들어보고
외출을 나가다가도 다시 와서 반복하는
문 잠김 확인 또 확인
도둑맞지 않으려고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반복해서 확인 또 확인
불안도 병이라는데
뜻밖의 손님이 심어준 불안은
아직도 생생히 자라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