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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음 Mar 29. 2016

익숙한 것을 찾아나선 여행

익숙함에서 새로움을 음미하는 과정

2016년 1월 런던(London)의 밤거리



흰 병원 복도를 메운 아이들이나 힘없는 노인들이 나오는 보도 영상을 보니, 올해도 독감이 유행인가 보다. 나에게 감기는 4년에 한번 정도라며 우쭐해하다가, 아이들보다 머쓱하게 솟은 어깨가 이내 다른 의미로 머쓱해진다. 어깨가 으쓱거리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본 적도 있다. 하나는 어린 시절 알약을 삼키질 못해 곱게 빻아서 마신 덕분이다. 한 알을 삼키기 위해 너무나 많은 물을 들이부었는지, 감기에 걸릴 때면 내 핏물에선 보리차 향이 났다. 어머니는 내 혈관이며 피부마저 투명해지는 건 안중에 없었다. 끝내 물에 탄 약물은 삼켜야 했으니, 온 세포마저 감기라면 치를 떨었나 보다. 격렬한 거부반응 덕분에 면역력이 강해졌으리라 생각한다. 조금 재미없는 이유로는 겨울 새벽에도 꾸준히 수영을 한 덕분이라고 믿는다.


감기에 대한 기억이랄 것도 대체로 새로운 나라에서의 첫날이었다. 아즈텍 10만 병사가 500여 명의 침입자 앞에 무너진 이유 중 하나는, 낯선 병균에 대한 면역력이 없었기 때문이라던데. 내 육체가 점령당한 것도 주로 면역력에서 비롯되곤 했다.


첫 번째 기억은, 몇 년 전 2월의 일본이다. 정확히는 앞으로 10개월을 보내게 될 일본 유학 생활의 첫날이었다. 새로 집을 사용하게 된 어색한 두 형들과 인사를 나누고, 분위기처럼 식은 도시락을 먹었다. 그리곤 방을 정했는데, 각자 선호하는 방이 다르다는 점은 유학생활의 좋은 신호였다.


나는 세 개의 방 중 아늑한 안쪽을 차지하게 되었다. 비밀스러운 위치보다 액자 틀 같은 창밖 풍경이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액자의 왼편에는 학교 야구장 조명 아래 선수들이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고, 오른편 뒷산엔 북두칠성 같은 불빛들이 아련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그곳이 촉촉이 젖는 봄이면 바위 틈새 검게 그을린 얼음 조각이 자유를 얻는 모습이 애잔하게 그려졌다. 그리곤 산파 같은 하얀 손으로 산등성이를 어루만져, 노랗고 분홍색 입이 활짝 열릴 것이다. 내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그 상상력의 캔버스 때문이었다.


상상으로 뭐든 채울 수 있는 창밖과는 달리, 10평 남짓한 안쪽은 현실이었다. 다다미(일본식 장판)가 퍼즐 조각처럼 빈틈없이 깔려 있었고, 단정한 책상이며 책꽂이 등은 내 말벗이 되어 줄 것 같지도 않아 허전하기만 했다. 문제는 매트리스가 없는 침대 탓에 한기가 뽀얗게 깔린 바닥에서 자야 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가져간 이불은 어느 친척 결혼식 기념품으로 받은 것으로, 말 그대로 기념품에 불과했다. 그것은 솜사탕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믿길 만큼, 부피는 크고 미세한 틈이 많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를 챙겨주시려던 어머니의 권유를 만류한 스스로를 탓하며, 몸을 이리저리 구겨 넣었다. 산기슭 아련한 불빛을 목동처럼 바라보다가, 그것마저 하나 둘 꺼지자 어머니며 집에 대한 기억도 먼 옛날에 두고 온 것처럼 느껴진다. 난 잠이 든다는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꿈속으로 구겨져 들어갔고, 허전한 방에서 하얀 감기에 걸렸다.




여행이란 것은 너무나 익숙한 존재로부터
새로운 것을 음미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몇 년이 지난 어느 모퉁이에서, 유쾌하지 않은 겨울밤을 또 한번 맞이할 줄은 몰랐다. 좀처럼 영하권으로 내려가지 않는 유럽의 날씨를 비웃으며, 동방의 동장군을 무찌르고 왔다는 오만함이 화근이었다.


계절이 파고드는 스웨터 하나로 밤거리를 거닐거나 마인강 바람에 가슴을 활짝 열었으니, 동양의 동장군이나 서양의 엘사조차도 앓아 누었을 것이다. 열꽃이 만개한 런던 상공에선 메르스 의심환자로 격리되거나, 입국이 거부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만일 망상이 현실이 되거든 '디멘터(해리포터에 나오는 생물로, 온기를 앗아가고 냉기를 뿜음)' 때문이라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믿어줄지는 모르겠지만 해리포터의 나라에 온 나는 디멘터들의 격한 환영을 받았는데, 이들을 쫓아낼만한 마법주문이 떠오르지 않았다고 말이다.


다행히 성공적으로 입국하여 호텔까지 무사히 찾아갔다. 호텔방 TV에선 심슨이 'Doh'라며 지친 나를 비웃는 것만 같다. 괘씸함 때문이라도 '빅벤(Bigben)'을 보러 밤거리를 나갔으나, 찌그러진 그릇에 담긴 남루한 내 영혼은 현재를 즐기질 못했다. 결국 기대가 컸던 빅벤 앞 거센 템즈강 바람에 못 이겨 한 장의 사진만 겨우 찍은 채 숙소로 발걸음을 돌렸다.


손가락 하나만 종이에 베이거나 늦은 밤 형광등만 깜빡여도 도량이 좁아지는걸 보면, 낯선 장소에서는 익숙했던 존재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여행이란 것은 새롭고 비범한 것들로부터 자극을 받기 위해 떠난 것이지만, 한편으론 반대의 것을 찾기 위한 여정은 아니었을까. 너무나 익숙해서 존재조차 잊고 있었던 창가의 장식품이나 선인장, 쓰다 남은 로션따위의 안부가 불현듯 궁금해지는 저녁이다.


본 글은 2016년 1월의 여행기로, 발행일과는 시간과 계절 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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