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밝음 Mar 31. 2016

봄의 불청객, 알레르기 비염

예민한 감각에서 야기된 고통스러운 순간들

사진정보: 2015년 2월의 양평 두물머리


대부분이 그렇듯 첫째로 태어난 나는 많은 특권을 누렸다. 내 부모님 또한 그 역할은 처음이기에, 이래저래 꼬드기기 참 좋았다. 토실한 내 팔다리를 꼬물거리거나 부모의 재롱에 선심 쓰듯 웃어주면 뭐든 손에 넣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가장 맘에 드는 것은 깔끔함이었다. 마를린 먼로가 샤넬 넘버 5를 덮고 잤다면, 나는 하얀 파우더를 뽀얗게 덮었다. 그리고 햇빛 냄새나는 면 기저귀만을 고집했다. 덕분에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하얀 햇빛이라고, 내가 가장 먼저 깨우친 세상의 이치였다. 비밀을 알아버린 순간, 나는 태양의 왕으로 즉위했다. 점점 하얀 것들만을 탐한  감각은 미세한 차이를 분별할 만큼 명민해졌고, 예민한 어린이로 성장했다.



나의 예민한 감각은
뭉툭한 육체에겐 가혹한 저주였다


한편 뭉툭한 육체에겐 가혹한 저주였다. 하나는 알레르기 비염이다. 알레르기나 또는 비염 하나로도 충분히 고통스러울 텐데  가지를 한 번에 견디라니, 곱절로 괴로운 형벌이었다. 무지한 부모를 꾀어 하얀 햇빛을 탐한 대가로 평생을 깜깜한 동굴에 갇히고 만 것이다. 흉측한 곳에는 숨구멍조차 없어서, 종일 코를 푸는 노역에 시달려야만 했다. 증상이 좀 더 심해지면 아름다운 냄새뿐 아니라 역겨운 것들의 세상마저 잃고 말았다. 꽃향기와 정화조 냄새를 동시에 맡지 못한다는 것은 저주일까 축복일까. 어린 나에게 첫 철학적인 질문이었다. 또 한 가지 불편한 것은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누가 공부는 무거운 엉덩이로 한다지만, 나는 그것을 비웃으며 학업성취도는 가벼운 콧등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다. 그 저주엔 치욕스러운 것도 있는데, 여자친구와 입을 맞추려면 양치보다도 몰래 코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개구리 왕자의 거죽이나 내 코나 축축한 것은 매한가지이지만, 어떤 공주라도 내 코에 입맞춤으로 구원해줄 리 없었다.

굳이 유용한 점을 꼽자면,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끝에 벌이 앉은 듯 근지러워지면, 조만간 계절의 변화를 의미했다. 내 코는 시베리아 기단을 감지할 정도여서 정확히 20  예상한 계절과 옷차림으로 변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언젠가 기상청에서 높은 연봉을 주고 모셔왔다는 외국인 예보관이 떠올랐다. 난 그것의 1할만 준다면 기꺼이 내 것과 바꾸겠노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저주를 풀기 위한 수많은 시도가 있었다. 계절이 감지되면 장롱 속 옷 정리보다도 이비인후과에 들러 약을 비축하는 것이다. 들른 김에 내 코에 대해 오랫동안 상의 드리고 싶었지만, 의사 선생님께는 수많은 것들 중에 하나였나 보다. 실제로 늙거나 어린 코까지 대기실에서 훌쩍이며 울고 있었고, 진료과정은 자동화 공정 같았다. 우선 선생님이 몇 번을 들여다보고 다음 순서로 붉은 자외선 쬐기. 마지막으로 가습기 쐬기로 끝이 났는데, 늘 콧물이 아닌 돈만 빠져나갔다. 차도가 보이질 않자 내 고통은 외할머니 귀에까지 들어갔다. 점집을 신봉하는 할머니로부터 만일 부적이라도 건네받으면 '이렇게 된 이상 그거라도 한 장 베개에 품고 자야겠다'며 체념한 상태였다. 예상과는 달리 'OO 병원이 용하니 가보라'는 말씀을 해주셨지만, 그곳도 부적처럼 용하지 않았다.

자체 임상실험을 거치던 중에 우연히 친구가 복용 중인 코감기 약에서 하얀 햇빛을 되찾았다. 'XX 제약사의 약은 의사들도 안심하고 복용한다'는 말에 플라시보 효과였는지는 모르지만,  숨구멍이 트였으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렇게  2년간 자유를 찾았으나, 다시금 끈적한 동굴 갇히고 말았다. 해당 약이 시판금지 약물로 지정되었는데, 자세히는 필로폰 제조에 사용되는 성분이 함유되었기 때문이란다.



조금 느슨해져도 괜찮다


마지막으로 의미 없는 희망을 한약에 걸어보기로 하고 경동시장의 몇 집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한 곳만 유독 전화 주문은 안되며, 본인이 방문해야 한다고 하신다. 한의학에선 신체 기관들이 서로 연관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체질 검사가 필요하다는 말까지 덧붙이셨다. 나는 양약과 한약 중 어느 쪽이 우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단지 내 맥이나 여타 신체의 상태로 체질이나 성격을 확인해주시고, 책까지 꺼내 차분히 설명해주신 그 선생님 개인에게 마음이 기울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신체 기관들이 서로 연관 깊다는 말씀처럼 맥을 타고 내 마음까지 짚으셨나 보다. 선생님은 나에게 '성격이 예민해서 스스로가 그간 힘들지 않냐'고 나지막이 물으셨다. 이렇게 내 마음, 그리고 머릿속까지 무방비 상태로 들킬 줄이야. 내 코만 고치러 왔을 뿐인데, 그 한 마디에 내 마음까지 위로를 받은 것이다. 그리곤 '조금 느슨해져도 괜찮다'고 말씀하신다. 괜스레 찡해지는 것은 왜일까. 돌이켜보면 고생 많은 내 코며, 수많은 불안과 초조, 그리고 언젠가 어긋난 관계들까지 수많은 가지들은 나의 예민함이라는 줄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리곤 내 스스로를 검은 동굴에 집어넣었으며, 깜깜한 그곳에서 평생을 숨 막혀 고통받았던 나였던 것이다. 나는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두 달 동안  한약을 차분히 복용했다. 그리곤 완치에 가까운 수준이 되었다. 3월이 끝날 무렵인데 내 코가 시베리아 기단을 잊고 조금 여유가 생긴 것을 볼 때면 생각한다. 어쩌면 한약을 마실 때마다 선생님의 위로까지 함께 삼킨 덕분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폐허에서 불러보는 봄의 노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