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의 11월 잿빛 하늘에 갇힌 내 세상은, 3년 동안 한 줄기의 빛도 허락받지 못했다. 초록의 울음소리 하나 없었으며, 끝내 재 가루만 푸석히 날렸다. 그리곤 음습한 박물관 한편에 놓인 흑백 영사기처럼, 철 지난 것들만 반복해서 재생해댔다. 한편 내 3년의 기억은 검열로 싹둑 잘린 필름처럼, 일부 영영 잃고 말았다. 어쩌면 애초에 일어나지 않은 사건이라고. 스스로 믿고 싶었던 것이다. 애써 고여있는 늪의 심연으로 파르스름한 턱의 감촉이며, 여린 국화처럼 소복한 젊은 과부며 모두 떠나보냈다. 두 갈래 탯줄을 잘라내는 것만이 내가 무너지지 않는 유일한 길이었다.
매캐한 연기에 그에 대한 기억, 채취 모두 떠나보냈지만, 남겨진 재떨이만이 흐릿해진 사내의 푸른 숨결 머금고 있다. 코를 가져가 보지만 이내 이것마저 사라진다. 그리고 내가 존재했다는 기억 하나도 등을 돌린다. 남은 것은 사진이나 영상 속 주홍글씨처럼 낙인찍힌 날짜뿐이다. 찰나에 찍힌 어린것은 안데르센 동화의 잔혹한 원형을 일찍 알아버린, 그렁그렁한 눈을 짓고 있다. 다른 재롱잔치에선 장래희망이 '아빠'라며, 오랜만에 발음해 본 음절이 낯설었는지 눈물짓는다. 지금의 내 눈꼬리가 쳐진 것은, 그날의 눈물 자국일 터이다.
6살 무렵 걱정스러운 어머니는, 선생님의 권유로 내게 미술을 시켰다. 지금도 첫날 그린 회색의 알 수 없는 형체를 기억한다. 이제까지 서툰 입술에 담지 못 했던 문장이, 조막만 한 손가락을 통해서야 비로소 형체를 찾은 것이다. 감히 어느 심리학자도 짐작할 수 없는 것들을, 흰색의 촌교 같은 도화지 위에 숨도 돌리지 않고 배설해냈다. 그리곤 갈대숲에서 목도한 가슴팍이 뜯겨나간 채 나뒹구는 까치 새끼며, 도로 위 짓이겨진 형체 모를 짐승까지 흰 눈 속에 고이 묻어주었다. 일찍이 알아버린 죽음을 하나 둘 떠나보내자, 역설적으로 잃어버린 색깔을 되찾았다. 동화의 비극적인 결말을 알고 있지만, 사진기 앞에서 활짝 웃으며 밝은 색을 찾은 것이다. 지금도 글 속에 한줄기 빛 그려주려는 집착은, 심연에 침전한 것들에게 바치는 추도문 한 구절일 터이다.
때로 강 건너로 일찍 떠나보낸 것들을 나직이 바라보지만, 딱히 슬프지도 않다. 그저 심연 속 아귀며, 여타 흉측한 것들이 떠올라 안쓰러울 뿐이다. 언젠가부터 안쓰러운 존재에 대한 치유가 주위에 넘실대지만, 크게 개의치도 않는다. 누군가의 신발이 얼마나 불편한지는 신어보지 않았으니, 고통의 깊이를 지레짐작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다시금 빛과 색깔을 되찾았다는 말을, 단맛을 관장하는 혀끝에 담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한두 음절 혹은 '힐링'이라는 발음처럼, 내 혀끝에 잠시 맴돌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겐 입안 가득 퍼지는 통각이었으며, 그렇게 가볍게 담아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적어도 고작 휴가를 얻지 못하거나, 또는 고된 일상 때문에 사용할 법한 단어가 아니었다. 적어도 말이다.
글과 함께한 음악♪ (가수-음악)
* 이욱현 - 아픈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