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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음 Apr 01. 2016

1월을 추억하는, 두 가지 색

런던 타워 브리지(Tower Bridge)


1. Blue color


7살의 어느 아침, 나는 전깃줄처럼 뻗친 머리와 내복 바람으로 어기적 방에서 나왔다아침 만화영화를 보기 위함도, 새 나라의 어린이로 거듭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단지 미군 부대원들의 아침 구보 함성 때문이었다. 아침부터 하얗거나 검은 사람들을 한 무더기나 보는 것은, 명절 오후의 특선 마술쇼만큼이나 진귀한 광경이었다. 어쩌면 군대에 여자가 있다는 것과, 그녀들이 '베르사유의 장미' 속 '오스칼'처럼 씩씩했기 때문에 더욱 놀라웠다. 나를 깨운 군가의 의미는 모르지만, 그들이 내지르는 뜨거운 입김과 달아오른   성애 낀 창문을 얼음장처럼 파랗게 질식시켰다. 

일찍 일어나서 좋은 것은 200ml 딸기우유를 혼자 독차지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항상 배달된 흰 우유와 딸기우유를 두고 한 번씩 동생에게 양보해야 했지만, 탐탁지 않은 뻐꾸기 새끼의 심리였다. 어머니가 깰세라 우유함에서 딸기우유를 슬그머니 꺼내면, 토끼 마술에 성공한 마술사처럼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그러나 어렵게 얻은 것에선 시린 입김 맛이 났다. 달콤함을 기대했건만, 내 목구멍을 따라 겨울의 계절만이 흘러내린 것이다. 그것은 동생에 대한 일말의 양심 탓도 아니고, 겨울은 단 것도 달지 않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핑크색 우유갑이 처음으로 파랗게 보인 날이었다.




2. Grey color


영국의 하늘처럼 잿빛으로 변하는 11월이면 낮의 외출을 극도로 삼간다. 울먹이는 하늘을 최면에 걸린 듯 바라보면, 위로받지 못한 4살의 내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날은 끊임없이 들락거리는 발자국 때문에 잠에서 깼다. 일어나서 어머니를 찾았으나 집에 계시질 않았고, 내 눈높이에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다리만이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다들 혼이 쏙 나간 사람들 같아서 아무도 나에게 시선조차 줄 여력이 없어 보였다. 흉흉하게 현관문이 열린 틈으로 잿빛의 푸석한 빛깔이 날아들었다. 정신 나간 친척들 틈에서 미아처럼 어머니를 찾아 나서자, 그제야 큰 외숙모가 나를 발견하곤 달래 준다.


 외숙모는 온기가 돌지 않는 휑한 집에서 나를 데리고 나왔다. 어디로 가느냐는 물음에 시외버스터미널로 간다고만 했다. 거기 2층엔 내가 좋아하는 햄버거 가게가 있어서 외숙모랑    적이 있었다. 15분이면 도착할 거리지만, 오늘따라 외숙모의 발걸음이  그토록 느린 건지 모르겠다게다가 하늘은 왜 울먹이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지모든 ''라는 궁금증이 해결되지 않아 괜히 슬퍼진다결국 시외버스터미널 맞은편 횡단보도에서 울음이 터지고야 말았다. 난생처음 이유 없는 울음이었다눈물은 좋아하는 햄버거를 손에 쥐고도 그치질 않았고안에  머스터드 향이 이유 없이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며칠  나는 집에 누워있었다그 사이 끊어진 기억은 눈물에 졌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깜깜한 방에 침실 스탠드가 어머니 얼굴만 노랗게 비추고 나머지 우주처럼 영원히 깜깜하다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아버지와의 나 사이의 끈이 끊어졌음을, 마치 탯줄이 끊어진 것처럼 아려왔다조심스레 아버지에 대해 물어보았는데,  아버지는  벌러 가셨고 내가 어른이 되면 오실 거란다. 그러자  수염  아버지가 천장에 그려졌다가노란 불빛 때문인지 삼베처럼 보이는걸 입곤 이내 사라진다그날 이후 11월의   같은 하늘을 차마 쳐다볼  없어그것이 울다 지쳐 잠든 후에야 슬며시 바깥 볼일을 본다. 4살의 내가 아직도  앞에 나타나는 것은어머니가  슬퍼질까  그날  이상 캐묻지 않아서일 터이다. 위로가 필요했던 4살의 나는 여전히 시간 속에서  약속을 말없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리라. (이어지는 글)


3. 그리고 타워 브리지 앞에서


2016년 1월의 겨울. 새벽의 타워 브리지 앞에서, 의미 있는 기억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가 템스강에 의미 없이 쓸려 내려간다. 그냥 그런 아침이다.



본 글은 2016년 1월의 여행기로, 발행일과는 시간과 계절 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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