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타래처럼 다시 이어질 인연을 그리며
어느 겨울 밤, 홍대 앞 비탈길을 따라 걷던 중이었다. 골목에는 일본풍 빼곡한 목조 건축들이 노란 불을 밝혔고, 이국적인 처마 밑에선 미닫이문이 수시로 열렸다. 뜨겁게 달궈진 정종 한 잔의 차분함과, 양 볼을 녹이는 난로의 아늑함은 계절과 대비되었다. 정처 없이 거닐던 중, 한 가게 앞에 멈춰 섰다. 마루가메 제면소(丸亀製麺所)라는 우동집. 설마 그 가게가 맞을까. 한동안 꼼짝 않고, 창가에 신기루처럼 어른거리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러자 오래전 일본 유학생활과 한 남자의 흐릿한 형상이 얼비쳤다. 카즈 형이었다. 귓가엔 걱정 없던 청춘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때 미닫이문을 열렸고, 솥에서 끓어넘친 자욱한 수증기가 실타래처럼 굴러 나왔다. 나는 가늘고 기다란 실에 묶인 것처럼, 끌려가듯 안으로 들어섰다.
실내에는 국수를 푹 삶은 눅눅함과 밀가루 포대의 버석함이 공기 중에 부유했다. 조국으로 귀향한 노동자처럼 애써 감격스러움을 숨기곤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점원이 주문을 권했다. 감상에 젖은 눈을 감추고, 오랜 습관대로 '차가운 붓카케 우동(ぶっ掛けうどん)'을 주문했다. 점원은 차가운 우동이 맞는지 재차 물었고, 나도 거듭 확인시켜 주었다. 설렘과 그리움이 오롯이 담긴 접시를 쟁반에 얹고, 빈자리로 가져왔다. 우동 그릇이 테이블 위에 조용히 걸터앉았다. 우리는 재회한 연인처럼 한동안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나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한 채, 따뜻한 물로 마른 입술을 축였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났다. 결국 내 쪽에서 침묵을 깼다. 가지런히 놓인 스푼을 들어, 정결하게 채 썰어진 파와 그 위에 소복하게 앉은 튀김 가루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흡사 선불교 사상에 입각하여 조성된 일본식 정원을 파괴하듯이. 그리곤 간장 육수를 한 스푼 입술로 가져갔다. 가다랑어로 육수를 낸, 짭조름하지만 담백한 국물이 입안 가득 번졌고. 혀는 가장자리부터 갈변을 시작했다. 그러곤 좁고 깊은 우물 벽을 타고 흘러들었다. 텅 빈 가슴속 은밀한 뇌관을 건드린 것일까. 세모난 망치로 척추를 살짝 두드린 것처럼, 허리가 꼿꼿이 서고 가볍게 흥분되었다. 이번엔 튀김 가루를 눅눅하게 적셔, 한 모금을 더 마셨다. 방금 전보다 둔탁한 망치로 척추를 두드렸다. 진앙지부터 미세한 털이 쭈뼛 서더니, 너울 같은 진동이 몸 전체로 퍼졌다. 다시금 육수를 스푼에 가득 담아, 말없이 바라보았다. 담갈색 물에서, 몇 해 전 일본의 추억이 호수처럼 찰랑였다.
흐드러지던 벚꽃이 봄비에 흐트러지고, 허전한 자리를 연둣빛 잎새가 빼곡히 메우기 시작한 봄이었다. 어느 날 일본인 카즈 형이 우동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음식에 대해 까다롭진 않지만, 별다른 기대도 없었다. 우동에 대한 인상이라곤 쑥갓 내음이 여타 풍미를 잠식하고, 면은 쉬이 끊어지며, 강한 조미료 육수에 대한 것뿐이었다. 형은 학교 근처 마루가메 제면소(丸亀製麺所)라는 우동집으로 데려갔다. 주차된 하얀 경차와 줄지어선 자전거 여러 대가 인기척을 대신했다. 미닫이문을 열자, 점원들이 목울대를 울리며 '이랏샤이마세(어서 오세요)'라고 환영했다. 여섯 명 남짓 점원들은 각자의 일에 여념이 없었다. 반죽하고 면 삶기. 삼각김밥의 모서리를 검지 손으로 매만지기. 설거지 혹은 계산까지. 언젠가 놀이공원 열차를 타고 본, 초콜릿 공장에서 일하는 난쟁이들 같았다. 네모난 나무 쟁반을 품에 안고, 형의 추천에 따라 '차가운 붓카케 우동(ぶっ掛けうどん)'을 주문했다.
쟁반을 스탠드바에 올려놓고, 잠시 기다렸다. 점원은 갓 삶아 치렁치렁하게 늘어진 면을 찬물에 식혔다. 그리곤 일본풍 파란 빗살이 그려진 접시에 푸지게 담아 주었다. 탱탱한 면발은 대야에 담긴 물고기처럼 몸을 옆으로 말고 누웠다. 마지막으로 보온 물통에서 멀건 간장 육수를 반쯤 채워 주었다. 닭과 새우튀김을 집어 담고, 360엔가량을 지불했다. 생각했던 우동과 달라서 놀랐고, 저렴한 가격에 거듭 놀랐다. 나는 형에게 "소자에겐 눈을 감아도 아른거릴 맛입니다"라고 사극 말투를 흉내 냈고, 형은 재밌어했다.
그날 이후, 가장 좋아하는 일본 음식이 되었으며, 우동을 먹기 위해 갖은 사유를 만들어 냈다. 저녁 상차림이 번거로워서. 짝을 부르는 창밖 풀벌레 소리에 홀려서.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삶이 즐거워서, 혹은 집이 그리워서. 시험 성적이 만족스러워서, 또는 그 반대의 연유로. 삶을 통틀어 이토록 한 가지 음식에 집착하거나, 먹는 행위로부터 위로를 받은 적이 있었을까. 나는 각종 추억과 심상을 한데 반죽하여 우동 그릇에 담았다.
5월 초, 형이 골든위크 연휴에 무엇을 할 것인지 묻길래, 동네 오카야마 성이나 산책할 것이라고 답했다. 달리 계획이랄 것도 없었다. 유학생활에 치여서 연휴라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으며, 멀리까지 여행을 가기에는 사정이 녹록지 않았다. 형은 그럴 줄 알았다며 '소형 지도' 하나를 가방에서 꺼냈다. 여러 번 접었다 펴기를 반복한 듯 모서리는 하얗게 해졌고, 지도 상단에는 붉은 글씨로 '우동집 투어'라고 씌어 있었다. 형은 우동에 대한 나의 찬양을 알곤,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운 것이다.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무릎이 튀어나온 지도만큼 굽혀도 모자랐다. 나는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하고, 형의 얼굴만 빤히 쳐다보았다. 며칠 후, 형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시코쿠(四国) 섬 사누키 우동 가게에 도착했다. 원조라는 간판에 걸맞게 긴 줄이 면발처럼 늘어서 있었지만, 기다림마저 즐거웠다. 이윽고 우리 차례가 되어, 좁은 테이블에 우동 한 그릇이 놓였다. 하얗고 정갈한 국수 가락이 실타래처럼 담겨 나왔다. 씹지 않고 삼키면, 오늘의 추억과 우정이 영속(永續) 될까. 인연이란 질긴 것인지 쉬이 끊어지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행여 오늘이 잊혀질세라 우동 그릇에 추억을 눌러 담았다. 그러나 시간은 바닥을 드러낸 그릇처럼 떠났다.
누군가 가게 문을 열자, 서울 도심의 삭풍이 덜컥 들어온다. 스푼에서 찰랑이던 육수는 무거운 추억을 조금은 게워낸 듯, 다소 농담(濃淡)이 옅어졌다. 그것을 받아마시자, 기억이 입가에 맴돌다가 속절없이 침전했다. 그날을 붙들어 두려면, 몇 그릇을 더 먹어야 할까. 그러나 의당 같으리라 기대했던 추억의 채도(彩度)는 흐려지고, 이내 깜깜한 무의식 속으로 파고들 터이다. 봄 또한 어김없이 돌아오지만, 그날의 봄은 아닐 터이다. 5월 초순이 도래하면 그날의 기억과 형이 떠오른다. 지금은 끊어진 면 가닥처럼 단절되었지만. 그 자리엔 애절함과 회환(悔恨)만이 짓눌려 있지만 말이다.
시선을 우동 그릇으로 돌렸다. 무심히 찰랑이는 육수는 나를 위로하는 듯했다. 분명 그도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그러니 괜찮다고. 나는 그릇에 담긴 면발을 건져, 씹지도 않고 삼켰다. 떠나보낸 봄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기에, 끊어지질 않길 바라며. 필경 실타래처럼 이어질 그날을 그리며.
글과 함께한 음악♪ (음악가-곡)
* Ennio Morricone - Nuovo Cinema Paradi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