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거리 경주와, 장거리 경주에 관하여
몽롱한 내 정신은 밤하늘의 영롱한 고리에 도취되었고, 고리는 토성에 예속되었다. 나는 한 줌의 구도자(求道者)로서, 거대한 구체(球體) 면전에서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면면히 이어진 먼지층은 무엇을 위해 공전(公轉)하고 또 공전(空轉)하는가. 서로 충돌하고 마모되며, 핏빛 살육의 단거리 경주를 벌이는 것인가. 아니면 단조롭고 지루한 장거리 경주 중인가. 만일 은반에 근접해 녹취(錄取)가 가능하다면, 어떤 기척이 들릴까. 낡은 레코드판이 공기를 씹어먹는 탐식일까, 아니면 정결한 화음일까.
20대 초반까진 타인을 의식하며 단거리 경주에 임했다. 차안대(遮眼帶)를 쓴 채, 맹목적으로 달리는 그레이 하운드 견종(犬種)처럼. 공교육 체제가 그렇게 떠밀었고, 귀의하던 기존의 가치 체계가 견고했다. 봄소풍 레크리에이션을 목적으로 한, 자리 뺏기가 애달픈 놀이였을 줄이야. 그땐 몰랐다. 각종 시험이란, '즐겁게 춤을 추다가' 서로의 자리를 노리는 거라고는. 미처 몰랐다. 때로 보이지 않는 완력에 극심한 피로를 느꼈고, 쫓김에 말미암아 처연한 탄식만 한소끔 게워냈다. 개탄의 순간마다 내쉰 하얀 입김은, 둔탁해서 비상하지도 못했을 터이다. 소쿠리 속 병든 복숭아 하나는 주위를 빠르게 오염시키는 법이다. 누군가의 축축하고 삭은 날숨이 내 것인 냥 들이마셨고, 사멸(死滅)의 향기는 서로에게 전염되었다. 모두의 영혼은 물러졌고, 떫떠름한 맛이 났다. 목적이 변질된, 그리고 소멸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대학교 3학년 1학기. 인기 없는 수업에 나를 포함한 스무 명 남짓이 수강했다. 사리에 밝은 모두는 A+가 두 명이라는 것을 알지만, 함구했다. 더러 점수에 눈이 먼 누군가의 기만하는 행위와 요사스러움을 목도했지만, 체념하고 달관했다. 나에게 그 수업은 경영학 과목이 아닌, 사회학 과목의 피험자로 지내며 A에서 D까지 범주 내에 성격을 분류당한 수개월이었다. 좁은 우리 속 생쥐처럼, 다양한 민낯을 목도했다. 하루빨리 개미지옥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초연한 마음뿐이었다. 기말고사가 끝났고, 과제 제출 기간이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노트북을 켜둔 채,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리곤 가벼운 용무만 마치고 돌아왔다. 누군가 내 노트북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해당 수업을 함께 듣는 아이였다. 그는 짐승처럼 한껏 움츠린 채, 모니터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네모난 화면에는 공통 수강 과목의 과제가 버젓이 열려 있었다. 나는 "산업 스파이야?"라고 비꼬면서, 그의 궁핍한 응수를 기다렸다. 석양을 받은 그의 비루한 그림자는, 옹색한 변명을 대면서 갈갈이 뒤틀리고 있었다. 매부리코는 궤변을 늘어놓는 앵무새 부리처럼 길어졌고, 두 눈은 음흉함을 은닉하기 위해 도리어 희번덕거렸다. 뱀 거죽처럼 홀변(忽變)한 기색에 더럭 섬뜩했다. 이내 다른 연유로, 한번 더 스산해졌다. 혹여 내 자아를 투영하는 거울은 아닐까 하는 정념으로 말이다. 그날은 내 삶의 분기점이었고, 기존의 조악한 것들과 갈라섰다.
그 무렵 중랑천에 정비된 길을 따라 마라톤을 시작했다. 처음 몇 년은 1km 구간을 5회 남짓 반복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모퉁이 너머로 그림자처럼 홀연히 멀어지는 사람들이 궁금했다.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저기엔 무엇이 있을까. 그날 병아리가 세상이 궁금하여 알을 깨듯, 나도 버석한 경계를 무너뜨렸다. 스스로 불가능할 것 같다고 생각한 거리에 당도하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미로운 전율을 느꼈다. 다음날은 더 멀리까지 낚싯줄처럼 나 자신을 던졌다. 반환점을 멀고 팽팽하게 밀어낼수록, 회귀해야 하는 거리도 늘어났다. 그동안 자아를 가둔 어항은 생각보다 무르고 쉽게 깨지는 존재였다. 나중에는 한 번에 15km씩 일주일에 4회 이상을 뛰었다. 마라톤은 오롯이 혼자만의 경주였다. 마치 토성에 종속된 고요한 먼지 구름처럼.
삶의 가치관도 점차 마라톤의 방식을 닮아갔다. 단거리 경주 시에는, 상대가 80점이면 나는 81점 취득에 만족했다. 그 결과 스스로의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않았다. 하지만 삶의 태도를 장거리 경주로 전환하면, 종전과 판이하게 달라진다. 주변에 누가 달리는지는 중요치 않아진다. 내가 정한 목표까지 완주할 수 있는가. 그것만이 당면 과제이다. 나날이 비등점(沸騰點)이 상승했기에, 만점이라는 개념이 무색해졌다. 이를테면 뭉툭한 연필을 심지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깎아내는 것처럼. 덕분에 타인과의 경쟁에 따른 스트레스가 사라졌다. 그러나 내면으로 침잠하여 스스로를 파악하고, 종전의 나를 뛰어넘는 일에 오롯이 몰입했다. 결론적으론 평생토록 가닿을 수 없는 과업이 되었다. 이제 어느 누가 곁길로 새는지, 어디쯤 있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나는 고요한 우주 속에서 오롯이 유영하기 시작했다.
내가 글 쓰는 방식도 맥락을 같이한다. 부족한 내 목소리를, 보다 세밀하게 다듬을 수는 없을까. 이음새 자국 없이 매끄러운가. 또는 자기복제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다양한 문장과 글로 구현할 수 있을까에 몰입한다. 앞서 언급한 것들을 가없이 되풀이하곤 하면서.
오늘도 날씨가 허락된다면, 몇 걸음이고 멀리까지 달릴 터이다. 몇 년 전보다 속도는 느려졌지만, 내 걸음이 닿는 세계는 확장되고 있다. 부디 글쓰기도 이를 따라가길 희망한다.
글과 함께한 음악♪ (음악가-곡)
* 심규선(Lucia) - IN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