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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서 Aug 16. 2020

나는 영원한 붙박이 장롱

<불로장생 하시길>

어느 날 선배가 말했다.

"넌 입과 눈이 반대로 말하는 사람이야."

"??????"


사춘기 때부터 엄마에 대해 저항감을 가지고 있었다.

내 눈에 엄마는 늘 비합리적이고 비 이성적으로 행동했다.

김치를 담을 때는 필요 이상으로 양이 많아서 그릇이 모자라고, 밥은 너무 꽉꽉 눌러 담아서 

떡이 되었다.

남들처럼 예쁜 얼굴도 날씬한 체형도 아니라서 옷을 입어도 패션감각이 없어 보였다.

기미가 잔뜩 낀 얼굴은 아무리 좋은 화장품을 사드려도 커버되지 않았다.

때로는 섬 머슴아 같이 털털해서 자신이 여자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버리는 듯했다.

나는 그런 엄마에게 늘 화가나 있었다.




<엄마의 계란말이>


선배와 호주 여행에서 돌아오던 날, 엄마가 처음으로 공항에 나오셨다.

뭐지? 왜지? 갑작스러운 엄마의 등장에 의아했지만 엄마에게 선배를 인사시키고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는 별 말이 없었다.  해외공항에서 보았던 가족끼리의 인사가 부러웠지만

언제나 뾰로통한 나는 엄마의 어러 저러한 질문에 성의 없이 대답할 뿐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그 선배를 만났다.  

"너, 엄마랑 사이 나쁜 게 아니었어?"

"네? ..... "

"나는 네가 엄마랑 사이가 많이 안 좋은 줄 알았어.  언제나 엄마 얘길 하면 투덜대는 말투라서 말이야."

"그랬어요?  근데 무슨 뜻이에요?"

"그날 공항에서 말이야, 분명히 너의 입은 삐죽거리고 있었는데 눈은 하트를 그리고 있더라고. 

엄마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거야.  그래서 알았어, 너는 반대로 말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




선배의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엄마에 대한 특별한 레이더가 있었다.  

엄마가 어디 가서 어떤 일을 하시던 내가 알고 있어야 했고 모르면 화가 났다.  

예측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면 즉각적으로 반론을 제기하고 우겨대기 일쑤였다.

그러니 우리 모녀는 늘 전쟁터 병사처럼 치열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김치 부침개를 해달라고 하다가, 손이 크고 정이 많은 엄마가 다른 사람과 나눈다며 

몇 장 덜어내면 화를 냈었다.  다 먹지도 못하면서 괜히 왜 덜어내냐고 소리를 질렀다.

"어차피 너 다 못 먹잖아."

"그걸 어떻게 알아?  내가 다 먹을 건데 물어보지도 않고 왜 덜어? 이건 내가 해달라고 한 거잖아."

"넌 도대체 왜 그러니, 왜 이렇게 까다로운 거야?"


아침에는 야채주스를 만들고 생선을 굽고 찌개를 끓이셨다.  맛있게 먹으면서도 귀찮게 아침마다

이런 걸 한다면서 투덜대는 걸 잊지 않는다.  

"잘 만 먹으면서..."

"하니까 먹지, 이건 음식 만드는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어휴, 저걸 그냥..."




엄마는 황혼으로 가고 있고 나는 중년이 되었지만 우리의 대화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나의 엄마는 불로 장생하실 거라는 착각, 과학자들이 생명 연장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하고 있다는

믿음, 삶과 죽음으로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다는 오만이 나를 게으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오늘 아침에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요즘 비도 많이 오는데 지금 대체 어디예요?"

"어, 아침 일찍 나왔어.  아무개 엄마가 가락시장에 가서 뭐 사자고 해서."

"엄마, 코로나 때문에 사람 많은 곳에 다니면 안 되는데 그러다 아프면 어쩌려고 그래?"

"아유, 마스크 쓰고 조심히 다니고 있어.  너나 조심해."

전화를 끊으셨다.  큰 딸 잔소리 뻔한 거니 나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전 같으면 다시 전화를 걸어서 다짐을 받고 또 받아야 직성이 풀렸는데, 

오늘은 '그냥 이쯤에서 그만하자, 엄마도 듣기 싫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내일은 또 내일의 잔소리가 생기겠지.


그런데 말야, 엄마도 선배처럼 내 눈을 보고 계셨을까?






매주 일요일에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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