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폭풍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빗속에서도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 밀란 쿤데라
지난해 말부터 시작되는가 싶더니 한국의 설 연휴가 끝나고 모두들 마스크와 세정제를 사기 위해 약국과
편의점등에서 줄을 서기 시작했다. 만원 이하로 살 수 있었던 세정제는 값이 몇 배로 뛰고 마스크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라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은 다행이었다. 당시 1일 감염자 수는 전국적으로 두 자릿수와 세 자릿수를
오가고 확진자들의 동선이 공개되면서 모두들 주변에 위험이 있는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러는 와중에도 정확한 증상이나 후유증을 아는 것은 어려웠다. 그저 감기 증상과 비슷하다고 하니
걸려서 고생은 하더라도 나을 수 있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기는 했다. 최소한 나는 그랬다.
중국 우한 상황을 유튜브로 보면서 만화나 영화처럼 길에서 픽픽 쓰러지는 모습이 현실과 상당한 괴리감을 느끼게 했다. 알 수 없는 공포가 있었지만 패닉은 아니었다.
공포는 사람들을 갑자기 벼랑으로 밀어버린다.
대구 신천지 발 대량 확진이 발생했다.
신천지 교인들은 대중교통을 타고 전국 각지로 이동했고 코로나는 내 주위에 바짝 다가왔다.
매일 확진자와 완치자, 사망자 수가 공개되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래도 완치가 되는 걸 보면 유튜브 동영상
은 과장인 것 같다. 늘 그렇듯 불행은 내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지금 확진자들은 마스크 쓰기를 게을리하고 개인위생을 신경 쓰지 않아서 걸린 거야. 그러니 더 열심히 마스크 쓰고 손을 씻자.'
그 와중에 직장 동료가 폐암으로 사망했다. 장례식장은 그가 치료를 받던 병원이 아니고 야트막한 산 아래
도심과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간 그곳은 그를 잃은 슬픔보다 조용하고 삭막한 분위기
때문에 더욱 가슴이 아팠다.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동료는 코로나 검사를 3차례나 받았다.
두 사람의 부재로 내 일은 산더미 같이 쌓이고 그만큼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미열이 계속 나고 기침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호소하는 동료에게 나도 힘들다는 말을 하는 건 사치였다. 그가 코로나라면 직장은 폐쇄되고 직원 모두 격리되어야 할 상황이었으니 솔직히 누구 하나 마음이 편할 수는 없었다.
나와 내 가족은 어떻게 하나, 내가 머물렀던 카페와 식당, 그리고 수많은 장소들 투병보다 내가 끼질 주변의
민폐가 너무 두려웠다. 게다가 딱 그 시기에 발가락 수술을 위해 병원에 입원하고 통원치료를 받지 않았나.
내가 타인의 불행에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숨쉬기 어려운 두려움이었다.
그러니 검사를 받는 본인의 걱정은 어떠했겠는가.
이제 그만, 분노와 두려움은 지겹다.
이제 방역을 3단계로 격상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말들이 오가고 있다.
쉽게 끝나지 않을 코로나 일상은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될 것이고 포스트 코로나가 가져다 줄 우리의 변화된
일상은 당연히 과거와 많이 다를 것이다. 역사 속에 깊은 한 줄을 남길 2020년이다.
그렇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성에 앞서 나는 본능적으로 무언가 내적인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다.
갑자기, 확진자 하루 2천 명을 예상하는 지금 말이다.
무엇이든 바닥을 친 추락은 비상을 선물하는 것 같다. 감옥 같은 일상이 스트레스를 주지만
마음 저 밑바닥에서는 뭔가 꿈틀대고 있다.
슬픔, 좌절, 분노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지겹고 단조롭고 재미없다고 소리치고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희망이다. 어느 쪽을 볼 것인가는 본인의 선택이지 않은가.
방역은 최선을 다하고 있고, 코스피는 전례 없이 날아가고, 배달업체와 인터넷 비즈니스는 호황을 맞았다.
비 대면 업무들이 늘면서 그에 따라는 산업이 부상하고 학교들은 탈 교실화로 진행 중이다.
스피노자의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말처럼 지금 이런
상황에 나의 사과는 무엇인가? 오늘을 열심히 사는 것 외에 내가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렇게 생각이 미치니 갑자기 손끝에서 전율이 느껴지고 심장이 크게 두근거린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나는 오늘 행복한 공상에 빠져야겠다.
일요일 글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