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부터 싸움은 당신들끼리 하세요.
"동의할 수 없는 말"이라고 했다.
푸른 하늘 위에 하얗고 가벼운 구름이 떼 지어 유영하는 모습은 비현실적이었다.
'비행기 타고 태평양을 건너지 않는다면 이런 하늘은 경험할 수 없는 거잖아?'
노란 자전거를 카페 문 밖 계단 옆에 뉘어 놓았더니 지나가는 사람들 발에 자꾸 걸리는가 보다.
자전거를 힐끔거리면서 중얼대는 모습이 주인은 어디 갔는지 책망하는 모습이다.
그래도 움직일 생각이 들지 않았다.
커피숍 실내 음악은 징그럽게 광광대고 있는데 나는 진공상태에 빠져들었다.
불현듯 조이는 심장에 대고 속삭이듯 내뱉었다.
‘좀 작작하라고!’
감동도 격정도 없이 살아온 사람이다.
언제나 가운데로만, 상처를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으려고 그저 가운데로만 살아왔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친구 부부의 불화는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삼성역에서 송파역까지 아무 생각 없이 터벅터벅 걷게 만들고, 일하다가도 펜을 떨어트리게 만들고
밥을 먹어도 배부르지 않게 만들었다. 자려고 누우면 눈물이 흘렀다.
이 사람들이 나를 어디로 끌고 가는 거지?
친구의 남편은 통화가 될 때까지 전화를 걸었고 톡을 했다.
'내가 무언가 해야 하는구나. 이 두 사람은 절벽 위에 서 있는 상태구나.'
그래서 냉정한 말투로 친구의 심정을 전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대답은 '동의할 수 없음'이었다.
'동의할 수 없음'이라니?
그.럼. 헤.어.져!
자리 깔고 길에 앉아 볼까? 나는 이 전쟁의 결말이 눈에 보였다.
이혼을 해도 백만 번, 백만 스무 번이나 할 수 있는 이유지만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겉으로는 '이혼해버려?'라고 말하지만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그러니 내가 친구의 편을 드는 순간 그 둘은 더 힘들어질게 뻔하다.
게다가 나는 체질적으로 한 사람 편을 드는 일은 어색하다.
특기를 살려보자.
친구는 자신이 결혼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을게 분명하다.
그건 내게 이혼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둘이 다시 원래로 돌아가도록 하는 일이다.
속으로는 울화가 치밀었다.
'너희들 계속 그렇게 해봐, 둘 다 불러다가 머리에 박치기를 해버릴 거야.'
일단, 내 방식대로 처방을 내렸다.
남편에게는 어떤 이야기도 듣기만 하라고 했다.
자꾸 대꾸를 해서 변명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면 더 어려워지니까
그저 듣고 <미안하다>라는 말만 지겨울 정도로 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뒤로 물러날 수 있는 <허용 선>은 정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가령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헤쳐지는 일이 벌어지려고 하면 단호하게 멈추라는 표시를 하라고 말이다.
스스로 지키지 않는 존엄은 관계가 회복된다 해도 복구되지 않는다.
친구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네 말이 모두 맞다'라고 술이라도 마시면서 같이 남편 욕을 해주면 좋으련만 나는 그런 류가 아니다.
그 와중에 태도를 지적하고 정말 그런지 다시 생각하라고 냉정하게 말하는 바람에
친구가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러니 말하면 듣고 아니면 질문하지 않았다.
이렇게 수개월이 지나고 다행히 파국은 막았다.
물론 나는 그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읽고 말만 던졌을 뿐이었지만 말이다.
남편은 집으로 들어갔고 계속 티격태격하지만 더 이상 관계가 악화되지는 않았다.
다시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휴~"
계속 한숨을 쉬는 것을 보니 집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나의 대답은 이랬다.
"이제 다 됐어요. 시간이 해결할 거예요. 힘내시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원하는 그곳에서
웃고 있을 겁니다."
내가 가족 상담사도 아니고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나도 답을 모르는데 말이다.
다시 길거리에서 자리를 깔아볼까 하는 생각이 스쳐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들이 <진정한 가족, 운명, 솔메이트>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면 보인다더니 별개 다 보인다.
나는 그 둘을 참 좋아하나 보다.
파도가 아무리 높아도 그 높이가 바다만큼 깊지 못하고
수많은 설렁탕이 모두 진국일 수 없는 것처럼
'시간과 노력 그리고 지혜'를 담보한 인생의 허들은 스토리를 제공해 준다.
많은 것을 함께 겪고 이겨낸 관계는 세상 무엇보다 아름답고 단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관계>라는 단어만큼 <과정>이 중요한 것은 없지 싶다.
일요일에 글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