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홈스테이
무겁고 큰 진청색 책가방을 어깨에 맨 제니(가명)가 아파트 정문 앞에 내렸다. 그녀는 택시 기사님이 커다란 여행 가방을 서둘러 내리는 것을 보고 그 위에 기내용 케리어를 얹더니 내 얼굴을 힐끔 재빠르게 훑어보았다. 동행한 관련 기관 직원이 내게 인사를 하면서 제니를 소개해 주었다.
"어서 와요." 나는 방긋 웃으면서 큰 이민가방 손잡이를 내쪽으로 끌어왔다. 사실 좀 쑥스러웠다. 속으로 환영한다고 말할까 어쩔까 이리저리 궁리를 했었는데 결국 우리는 그렇게 첫 대면을 했고 미국식으로 허그를 하거나 웰컴을 외칠 타이밍을 놓친 채 집으로 올라왔다.
오히려 어머니가 현관에 나오셔서 허공에 두 팔을 휘저으며 어서어서 들어오라며 반가운 손짓을 하셨다. 제니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사전에 배웠음직한 한국식 인사를 위해 고개를 깊이 숙였다.
"안녕하세요?"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히 초급에서 중급사이라던 한국어 실력은 어디 가고 계속 영어로 말을 하는 거다. 어머니는 천천히 말하면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하셨는지 "가.방.내.려. 두.고. 저.녁. 먹.자., 배.고.프.지.?"라고 아주 천천히 또박또박 말씀하셨는데 제니는 전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다른 사람들이야 영어로 말할 기회가 더 생겼으니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전혀 아니었다. 우리 집 환경은 영어보다는 한국어가 필요했으니까 말이다. 처음에는 어색해서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아무리 쉬운 말을 해도, 천천히 말해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눈치를 살피다가 짐작으로 상황을 이해하고는 영어로 짧게 대답할 뿐이었다.
나는 속으로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영어 실력이 전무인 어머니와 한국어 실력이 전무인 미국학생 그리고 기초 영어 수준인 내가 한 집안에서 40일을 살아내야 하니까 말이다.
어쨌든 나는 세탁실, 화장실을 보여주고 냉장고를 열어 보이며 언제든지 먹고 싶거나 보관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사용해도 좋다고 말했다.
제니가 사용할 방에는 미리 지켜주었으면 하는 몇 가지 규칙을 메모해 두었었다.
- 아침 식사는 7시~7시 30분, 저녁 식사는 6시~7시
- 빨래는 필요할 때 꺼내놓고 속옷은 직접 세탁하기
- 방 청소는 매일 해주지만 물건 정리는 스스로 하기
- 화장실 사용 후 정리 - 샤워 후 수도꼭지는 잘 잠겄는지 확인하고 머리카락 정리하기
- 필요한 것이 있거나 궁금한 내용은 언제든지 물어보기
제니(가명)는 방에 들어가 짐을 풀더니 작은 쇼핑백 하나를 들고 나왔다.
자신이 살던 주의 특산품 등이 인쇄된 에코백, 냉장고에 붙일 수 있는 마그넷, 인도 밀크티, 양념 파우더 등등이 들어있었다.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손 글씨로 쓴 카드였는데 당신의 딸을 맡아 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와 잘 부탁한다는 당부의 글이 쓰여 있었다.
기대하지 않은 선물에 나는 감동을 받았다. 더구나 손 글씨라니 생각하지 못한 선물이었다.
어머니는 서둘러 저녁을 차리셨다. 첫 메뉴는 닭볶음탕, 감자볶음, 계란말이, 오이지무침, 김, 김치였는데 식탁에 차려놓고 방문을 노크했더니 편한 차림으로 옷을 갈아입은 제니가 웃으면서 식탁에 앉았다.
닭고기를 꽤 맛있게 먹었다. 자신이 만든 음식을 처음으로 외국인 앞에 내놓은 어머니는 계속해서 제니가 먹는 음식들이 어떤 건지, 정말 잘 먹는지 아니면 억지로 먹는지 살피시는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친 제니는 자신이 먹은 그릇과 수저세트를 싱크대에 넣으며 잠시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였다.
내가 그냥 둬도 괜찮다고 하자 짐을 마저 풀고 쉬겠다는 말을 하고 방에 들어갔다.
아주 더운 여름이었는데 에어컨을 켜 놓았기 때문일까 제니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양치질도 샤워도 하지 않고 그대로 방에 들어가서 다음날 아침 6시까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아침을 먹고 7시 50분쯤 학교를 데려다 주기 위해 같이 집을 나섰다.
웬 가방이 그리 크고 무거운지 아침 출근길 대중교통을 타기에는 본인도 타인도 불편할 것 같은 가방을 메고 매미가 울어대는 길을 따라 버스 정거장으로 갔다.
"잘 기억해 둬, 여기서 버스를 타고 잠실역에 내려야 해." 그리고 2호선을 타고 가다가 00 대학교 역에서 내리면 돼. 대학 정문을 지나 수업이 있을 학교 건물까지 데려다주고 집에 올 때 길을 모르면 카톡을 하거나 전화를 달라고 하고는 헤어져 돌아왔다.
그날 저녁 제니는 식사 시간에 맞춰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낮에 카톡이 왔었는데 수업이 끝나고 미국 대사관에서 단체 견학 중인데 5시에는 집에 도착할 거라는 메시지였다. 그랬는데 6시가 되었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나는 불안한 생각이 들어서 데리러 갈 테니 전화를 달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전화도 했지만 받지 않았다. 집 주소는 가지고 있으니 결국 돌아오기는 할 테지만 너무 걱정이 되었다. 대중교통이 없는 미국 남부 작은 시골 마을에서 온 제니는 서울의 대중교통에 어떻게 적응할까. 게다가 오늘은 첫날이었다. 한참 마음을 졸이고 있는데 7시 30분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헤맸는지 땀범벅에 지처보이는 모습을 하고도 늦게 돌아와 죄송하다고 말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그때 한 번 안아줄걸.'
무사히 도착해서 괜찮다고 다행이라며 안심시키고 시원한 물을 한 컵 마시게 했다. 너무 안쓰럽고 속상했다. 왜 연락을 받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핸드폰을 2개 들고 다니는데 한국에서 사용할 폰을 집에 두고 갔다고 했다. 단체로 있었을 때는 함께 동행했던 학교 관계자 도움으로 내게 연락을 했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그럴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게다가 대사관은 시청역에 있지 않은가. 2호선을 탔는데 잠실역에 내리지 못하고 강남까지 갔단다. 게다가 잠실역에서 버스를 타기 위해 출구를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맨 것 같았다. 구글 지도를 보고 왔는데도 아직 어린 학생에게 낯선 환경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애태운 것을 눈치챘는지 자신은 괜찮다며 아무렇지 않은 듯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날도 제니는 샤워를 하지 않았고 다음날 아침 6시쯤까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몸이 끈적끈적할 텐데.... '
나는 노크도 하지 못하고 방에 불이 꺼지는 것을 바라보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