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윈서 Sep 28. 2020

운명(運命) - 2

<운>이 아니라 <과학>입니다.

운명 -1에 대한 글은 아래 링크로 들어가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brimorn/22



전 세계 인구가 무려 77억 명 정도나 된다고 하는데 완전히 똑같은 삶을 사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증명할 필요 없이 우리 모두 인정하는 부분이죠.  

헤어졌던 쌍둥이가 결국 만나게 되겠지만 그들의 삶이 똑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큰 틀에서, 예컨대 결혼해서 중산층으로 살다가 견딜만한 병을 앓기도 하고 좋아하는 

음식이나 색깔이 같을 수는 있겠죠.  

그렇지만 아무리 쌍둥이 삶이라고 해도 똑같은 운명이라고 말하는 건 과장입니다.

변수도 있습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 인자로 인해 삶에 대한 태도, 어려움에 대처하는 방법, 

목표의식 등이 서로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도 사주에 대입해 해석하기도 합니다만 그것은 열성이 도태되는 등 생물학적 요소를 

무시하는 비과학적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행운이야>


여기 두 사람 A와 B가 있습니다.

두 사람은 나이가 같고 태어난 달도 같으며 날짜와 시간만 약간 차이가 납니다.  

부모의 교육 수준이 비슷하고 같은 동네 살다 보니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를 함께 다니며 친한 친구로

지냈습니다.  그러니까 두 사람의 환경도 엇비슷하다는 말이 되는 겁니다.


그러나 성향은 다릅니다.

 A는 사교적이고 노래를 잘하는 등 활동적이어서 주위에 친구도 많이 있습니다.

반면에 B는 신중한 편이고 책을 좋아하며 약간 사색적이라고 가정합시다.  

중학교까지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이 둘은 고등학교에서 눈에 띄게 다른 궤적을 보입니다.

사교적인 A는  예체능 쪽으로 B는 과학 철학 등 보통 순수학문이라고 불리는 길로

접어들고자 합니다.

이때 엄마들은 아이들의 진로를 알아보기 위해 유명하다는 철학원에 갑니다.

그곳에서는 사주에 따라 생애주기별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해 주겠지요.

물론 당장 고등학교 진학과 대학 진학에 대한 이야기는 더 구체적일 것입니다.

그런데 A와 B는 엄마가 듣고 온 자신들의 미래가 과연 마음에 들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나의 사주는 내가 원한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같은 사주의 해석도 시대에 따라 가치관이 변하고 추구하는 지향점이 달라지면서  

<이것은 좋고, 이것은 나쁘다>로 단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보통 A는 사교적이고 노래를 좋아하며 활동적이라서 외향적이고 B는 그 반대로 내향적이라고

합니다.  사실 우리 사회는 내향적인 사람보다는 외향적인 사람을 더 선호하지 않나요?  

특히나 2000년도 이전에는 물론이고 지금도 외향적인 사람이 친구들도 많고 회사에서 승진 등

기회도 많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편견이 깨지면서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 요구하는 리더의 <상>이 대중을 휘어잡는 다소 독재적일 수 있는 카리스마에서

따뜻하고 온화하면서 조화를 중요시하는 카리스마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죠.

사실은 나도 내향적인 사람이다 보니 외향적인 것을 선호하는 사회에서 고립감과 소외감을 느끼기도 

했었습니다.  사람들과 잘 지내기 위해 애써 외향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으니까요.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는 유전적 기질은 오래 버티지 못하더군요.

그때 우리 사회에서 <나> 답게 사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스스로  A로 혹은 B로 태어나기로 결정한 사람은 없습니다.

건강운, 직업운, 결혼운 등 각종 운들은 그야말로 <운>입니다.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니라는 말이죠.




<계속>

작가의 이전글 운명(運命) -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