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윈서 Oct 02. 2020

사랑하면 보인다

사랑한다면 천천히


추석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잠시 TV를 켰다.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는데 마침 오은영 박사님이 녹화된 화면을 보고 금쪽이의

마음과 생각을 동석한 부모와 패널들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을 볼 때면 아이들의 상태를 알아내고 솔루션을 제시해서 해결의 실마리를 잡는 선생님의 능력에 매번 놀라고 정말 존경스럽다.  

이날 내가 본 것은 6살 둘째 형과 놀다가 투닥거리자 아버지가 훈계하는 장면이었는데,

중간에 엄마의 말이 둘째 금쪽이(주인공)의 화를 더 돋우고 있었다.


아   빠 : 아빠가 장난감을 버리지 않았으면 너희 치고받고

             싸웠을 거잖아.

엄   마 : 치고받고 싸우게 놔두지 그랬어! 

              (문울 쾅 닫고 나가버린다.)

금쪽이 :  (엄마의) 말이 충격적인게 아니라

              뜻이 충격적인 거잖아!  

              나를 죽이려는 거잖아!

              나는 아들이 아니라는 거잖아!

엄   마 : 엄마가 언제 너한테 죽으라고 했어?

             너희들이 싸우니까 싸우게 놔두라고 한 거잖아!


오은영 박사 :

"말이 충격적인게 아니라 뜻이 충격적인 거잖아."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아세요?

 (이 말은) "아이들이 치고받고 싸우면 부모들이 보호해야 하잖아.  안 다치게 해야 하잖아.

치고받고 싸우게 내버려두라는 뜻은 나를 보호하지 않겠다는 거잖아."

결국 금쪽이 얘기는 날 좀 보호해 주세요.  

이런 의미입니다.

그런데 부모님은 이 뜻을 못 알아 들었어요.  

그리고는 엄마가 이렇게 반응하잖아요.

'나는 잘못한 거 없어 네가 잘못한 거야.  

나는 정당해.  네가 내 말을 못 알아들은 거라고.'  이렇게 말이죠.


 .... 여러분 아이와의 문제는 언제나 마음으로 접근하는

것이 먼저여야 해요.  마음이 먼저 연결돼야 효과적으로 훈육할 수 있어요.



이 장면을 보면서 아이는 감정과 언어의 층위가 다양하고 세분화되어있는 것에 반해서 엄마는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직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은 성인들에게도 해당된다.  

가족, 학교, 직장, 친구, 동호회 어느 곳에서든 발생할 수 있는데 대개의 경우 상대방의 언어를 자기 방식으로 이해하고 의미를 증폭하는 측에서 감정을 먼저 드러내거나 불편한 내색을 하기 쉽다.



우리에겐 오은영 박사님이 존재하지 않는다.


구글이 각국의 언어를 상호 해석해 주고 있고 서비스 질도 계속해서 나아지고 있다.

덕분에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도 배낭여행을 갈 수 있고 문서나 동영상을 보고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어졌다.  우리는 그렇게 편리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감정>과 글의 <행간>도 함께 해석할 수 있게  된 것일까?  

아쉽지만 그렇지 않다는 건 우리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언택트> 시대가 가속화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관계 유지>의 전적인 책임 개인에게 몰리는 느낌이 든다.

진정한 <컨택트>와 <언택트>의 스위치를 가족, 학교, 직장 등과 나누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좀 걱정되고 부담감이 느껴다.




어릴 적 학교에서 강사님이 수업 도중 이런 말씀하셨다.

"여러분, 사랑하면 보입니다."  

나는 이 말이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졌던지 순간 화살이 되어 뇌리에 박혔었다.  

그 후 오랜 세월 동안 강사님의 말은 사람이든 일에 대해서든 나의 태도를 반성하는 잣대가 되어왔다.

'나는 그 사람을, 그 일을 사랑하였는가, 무엇을 보았는가'


좀 천천히 가보자.  

상대방의 말 뜻을 확대해서 이해하기 전에,

내 말이 그대로 받아들여지길 바라는 말을 쏟아내기 전에, 무엇보다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고 있다는 생각을 배경으로 깔아보자는 이야기다.

사랑과 신뢰로 천천히 접근하다 보면  문제에 마음으로 접근하게 될것이고 이런 노력은 성격 차이나 기질 차이로 빚어지는 갈등은 줄어들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과학 발달에 날개가 달린 오늘날이 말로

인간의 인내심 더욱 구되는 것은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 운명(運命) -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