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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서 Nov 08. 2020

농산물 직거래의 어려움

<이모가 호두강정 만들어 줄게, 다음기회에>


이모가 호두강정 만들어 줄게.


이제 한 달 남짓 수능 시험을 앞둔 조카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을까 생각해 보다가 호두강정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몇 달 전에 보낸 호두파이도 잘 먹었다고 했으니 아이템은 자신 있었다.  성공적인 강정을 위해 마트에 가서 소포장 호두를 사서 만들어 보았는데 결과는 성공이었다.  그래서 이왕이면 국산 호두로 만들기 위해 포털 사이트에서 어느 호두 농장에서 운영하는 쇼핑몰을 찾게 되었다.  

농사짓는 어르신 부부의 사진과 <국산>이라는 기대치 그리고 만족스러운 후기들은 가격 부담을 잊게 만들기 충분했다.


딱딱한 껍질을 까고 반으로 잘린 상품을 <반살>이라고 한다.  그 반살이 강정 만들기에 적합하기에 내 조카 좋아하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주문을 꾸욱 눌렀다.  배송은 이틀이 걸렸다.  밤늦게 주문했으니 이 정도면 총알배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에 있으면서도 집에 가서 2Kg이나 되는 강정을 만들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작은 박스가 하나 도착해 있었다.  뭐랄까, 포털사이트 메인에 홍보하는 <규모 있는 판매 사이트> 치고는 좀 성의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과다 포장으로 쓰레기가 포화상태>라는 사회적 이슈도 있으니 이런 것도 익숙해져야겠다고 생각하고 박스를 풀었다.

작은 압력에도 부서지는 호두의 특성 치고는 에어캡으로 가볍게 한번 휙 제품을 감았을 뿐이다.  '나쁘지 않네, 쓰레기도 줄일 겸'이라는 생각이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결국 본품을 풀었다


<정확히 반살 / 그냥 집에서 먹는용(해당 사이트 설명) 1/4살 / 햇 호두로 보이는 반살 상태와 크기>


미안, 조카야!


엄마가 보시더니 올해 재배한 호두가 아니고 묵은 호두가 보인다고 하셨다.  유난히 검고 씁쓸하고 기름 쩐내 나는 것도 있었다.  순간적으로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농산품은 공산품처럼 기준 품질이라는 것이 없으니 이 불편한 상태를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일단 정상적인 반살은 맨 왼쪽 사진처럼 크기가 아주 작고 색깔이 거무튀튀했다.  전체의 1/3이 4분의 1살이고 즉, 집에서 먹는 용이라며 조금 저렴하게 판매하는 제품이고 반살의 대부분은 이리저리 상처가 나고 찌그러지고 껍질이 반이상 벗겨진 것도 있었다.  게다가 접시에 쏟아부으니 두어 수저 정도의 가루가 나왔다.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서둘러 지방 농수산물 직거래 홍보를 하는 분에게 사진을 보내니 이 정도면 환불을 요구하는 게 좋겠다고 하신다.  사이트를 보니 어떤 분이 이런 문제로 환불을 요구했다가 몹시 불편한 상황이 있었는지 하소연하신 글이 보인다.  환불을 요구하는 것이 얼마나 번거롭고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인지 나는 벌써부터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농산물 특성상 개개인의 기준에 따라 혹은 기호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게 아닌가.  내가 누른 것도 아닌데 날더러 상품 포장을 어떻게 뜯었냐는 둥 받아서 어디에 보관했냐는 둥 이러저러 얘기를 들으면서 불편한 질문들을 할 것이고 나는 블랙 컨슈머가 아니라는 설명을 장황하게 해야 한다.  

예전에 어느 농사짓는 분이 그랬었다.  "서울 사람들은 참 이상해요, 좀 찌그러지고 작고 못났다고 물건이 나쁘다고 뭐라고 해요.  먹는 거 다 똑같고 해마다 작황이 다르니 이러저러한 물건이 나오는 건데 그걸 이해 못해요."  결정적으로 "농산물은 공산품이 아니에요."



판매자와 구매자의 상거래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이 다른 것 아닌가?  


기준을 정할 수 없다고 기준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농협이나 수협 혹은 중간상인들에게 가면 분명히 크기를 선별하고 과일의 경우 당도나 상품의 여러 품질 등을 고려해서 수매를 할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일반 소비자와 직거래를 할 때는 그런 것들이 모두 무시되고 농사짓는 분들이 우위에 서서 품질을 결정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이렇게 되면 직거래에 부담이 되고  차라리 조금 비싸더라도 대형마트에 가서 선별된 물건을 사거나 수입된 농수산물을 살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농산물의 추수시기가 되면 농사짓는 분들이나 그 지인을 통해 구매의사를 묻는 전화를 받는다.  그럴 때마다 무통장 이체를 하면서 착각을 한다.  1) 아는 분이 지은 작물이니 농약을 적게 썼거나 무농약일 거야.  2) 마트 시세보다는 저렴하겠지.  3) 같은 가격이라면 마트보다는 물건이 좋을 거야.  

그런데 종종 물건을 받고 드는 실망은 <그래도 아는 분 고생하셨는데 그분 것 팔아드렸으면 된 거야.>로 귀결되곤 한다.  나도 돈 버느라 고생하고 있는데 그분들은 알아주시려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1) 소량 구매는 당연히 대량으로 구매하는 중간상인 보다 비싸다.  2) 제품 크기의 선별은 어렵다.  이유는 품질이 다소 떨어지는 상품을 팔기 어렵기 때문이다.  3) 소량 소비자가 구매하기까지 창고 보관비가 있다.  4) 마트에서 판매하는 농산물 보다 좋아 보이지 않는 것은 개인의 생각일 뿐이다 등.  그렇다면 지인 소비 혹은 농장별 판매 사이트 소비자에게 참 불리하다.  특히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지인에게서 구매한 물건은 <씁쓸하지만 그냥 먹는다> 외에 대안이 없어 내년에는 다시는 구매하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할 뿐이라면 말이다.  그러니 매년 같은 생산자에게 같은 제품을 구하는 빈도가 작은 게 아니겠는가. 

주문한 물건을 보낼 때와 받을 때의 상태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서로 이견이 생기기 일쑤이다.  "나는 그런 물건 보내지 않았는데요?"와 "이런 물건이 왔어요." 사이에 해결 방법은 무엇일까.



하나라도 해결해 보자.


문득 핸드폰으로 찍는 카메라가 생각이 났다.  

상품을 포장하기 전에 사진을 찍어서 구매자에게 보내고, 받는 사람도 사진을 찍어 자기가 받은 물건의 상태를 판매자에게 전달하는 것 말이다.  마트에 가면 포장지 위에 이 제품을 포장한 사람은 누구라며 연락처가 기재되어 있거나 사진이 함께 부착된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을 활용해서 직거래 판매자와 구매자도 서로 농산물의 사진을 찍어 교환함으로써 문제가 생겼을 때 좀 더 쉽게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거절하기 어려운 지인 구매라면 이 방법을 활용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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