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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서 Nov 01. 2020

사표 쓰기 계획

2021년을 계획하다



통장에 얼마가 있으면 과감하게 사표를 쓸 수 있냐고 동료에게 물으니 "음... 요즘 코로나 시기니까 1년 치 정도가 아닐까?"  1년이면 충분하다는 객관적인 자료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꽤 여유 있는 기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가만있자, 내 퇴직금으로 몇 달은 버틸 수 있을 거고 통장잔고 이리저리 하니 그 정도면 충분히 버틸 수 있겠네.'  혼자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불쑥 한마디 더 거든다.  "1년 후 재 취업이 100프로 된다는 가정하에 실행하라고."  


그는 경제 공부를 꾸준히,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 중 하나이다.  매일 종이신문을 읽고 유튜브나 각종 매체를 통해 쏟아지는 핫한 경제뉴스를 수집한다.  환율, 주식, 부동산, 금, 펀드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꼼꼼히 챙기는 데다가 엉덩이가 얼마나 가벼운지 생각과 동시에 나비처럼 날아서 은행이나 증권회사로 바쁘게 다닌다.   바쁘고 부지런하고 똑똑한 사람이다.  현실과 인내라는 두 단어를 통해 자신을 늘 단련하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존경심이 생길 정도이다.  그러니 분명히 내가 불안해 보였을 것이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사표를 훌쩍 던지고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을 것이다.  더러는 과감하게 앞뒤 재어보지 않고 회사를 박차고 나가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은 현실적인 이유로 실행하기 어렵다 보니 언제나 어설픈 자기와의 타협으로 끝나게 마련이다.  이럴 때 상상이라는 무기는 인간에게 얼마나 유용한지 새장처럼 물리적이고 답답한 상황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는 안정제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한다.


나는 좀 비현실적인 사람들 군에 속해 있었다.  한참 돈을 벌거나 무언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불살라야 할 시기에도 생각 없이 떠돌며 여행이나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베짱이라도 본인 죽을 나무에 덜컥 앉겠는가.  딱 죽지 않을 만큼, 그러니까 돈이 떨어져 밥을 구걸하지 않을 만큼만 <근로자>로 살았었다.  

그러다 보니 여행에 더 이상 의미가 없어 그 중독에서 벗어나는 순간마저 사회로의 복귀에 집중하지 못했다.  다시 돈을 벌고 다른 사람들처럼 좋은 차를 타고 싶은 욕망이 생겼을 때에는 여러 조건 상 소위 말하는 좋은 회사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아니, 사실 포기했었다.  그러니 비전이나 보상의 적절성 같은 건 고려하지 못하고 전형적인 아날로그 방식인 현재 회사에 <단기 알바>라는 최면을 걸고 입사했다.  그렇게 지난 6년이 흘렀다.  중간중간 퇴사 기회가 있었지만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와 구인 사이트를 기웃거릴 자신이 없어서 은근슬쩍 주저앉게 되었다.


<기타 치는 눈먼 노인 / 파블로 피카소>


그렇지만 근무 시간만큼은 배짱이와 정 반대 축에 있었다.  매일이 시험이고 시련이었다.  판매, 정리, 구매, 회계, 관리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나의 일이다 보니  늦은 점심시간도 동료의 업무량을 살펴야 하고 문 앞까지 나가다가도 업체 직원이 들어오면 멈춰야 했다.  고객들의 감정 받이로 하루를 소진하다 퇴근 시간에 다리를 질질 끌고 지하철을 타는 것은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1시간을 서서 집에 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격주로 토요일 풀타임 근무까지 해야 했지만 보상은 정말 보잘것 없었다.  


매달 말일이 되면 나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만두고 다시 세상에 나가 부딪쳐 볼까?  구직자 신분으로 돌아가 생활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또 다른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건가.  만약 실행한다면 이 나이에 가능할까.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  이렇게 내면적으로 고민을 하다 보면 일주일이 훌쩍 지나게 되고 나머지 3주는 다시 일에 몰입하는 시간이 반복되었다.


여행을 많이 다녔다는 것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왜 그렇게 미쳐 돌아다녔는지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그것을 통해 인생을 배운다는 말은 정말 배부른 소리에 헛짓이었고 잘난 척이었다.  인도 남부 흙집 위에 소똥은 세상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또한 울고 웃었던 많은 만남은 감정 과잉이고 춘삼월에 비키니 입고 바다 수영을 하는 것처럼 어색했다.  매 시간, 매 분마다 치르는 지금의 혹독한 전쟁에 비하면 기차역 구석에서 자는 쪽잠쯤은 더없는 낭만이었다.   이렇게 내가 지나온 시간들은 내면 깊숙이 침전되고 있었다.




코로나가 한참일 즈음부터 그동안 저 밑바닥에 묶어 두었던 <도전>이 설렘의 파도를 타고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만 있는 것이 미덕인 이 시점에 아이러니하게도 엉덩이가 들썩이고 수없이 많은 계획들이 두서없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금전적인 부자가 되기 위해 계속 그쪽으로 노력하는 동료를 통해서 세상에는 돈 말고 신나는 게 있다고 설명해 주고 싶어 졌다.  신나는 걸 하다 보면 돈도 벌릴 거라고 20대에 하는 막연한 생각도 하게 되었다.  나랑 똑깥이 살 필요는 없지만 나 같은 삶도 있다고 얘기해 주고 싶어 졌다.  

마침내 2021년 나의 계획은 <퇴사>가 되었다.

그 계획만으로도 나는 이미 해방되었다.


이직이나 사업 등을 확정하지 않고 그만두는 것은 무모하다는 현실적인 조언이 고맙지만 때로는 아직 계획 단계서 그만두고 일을 만들어가는 것도 방법이라고 얘기하고 싶어 졌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하겠노라고 결정했다는 것에 있다고 말이다.  

"내년에는 경기가 더 나빠질 거래.  미국 대선에서 어느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이렇게 저렇게 국정을 운영하게 되고 그 영향이 세계 경제에 어떻게 미칠 것이며 한국에는 이렇게 될 거래.  현재는 불확실성의 연속이야.  한국도 대선이 있을 거니까 잘 생각해 봐."  이렇게 조언하는 동료에게 '그럼 나는 대체 언제 그만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거야?  이러다가 늙어 죽을 거 같아.  답답해서 경제가 어떻게 되기 전에 내가 죽을 거 같다고.'라고 대답했다.

"올해는 코로나 19로 주가가 비정상적으로 올라서 내년에는 엄청나게 빠질 거래.  게다가 부동산도 지금은 너무 비싸서 내년에는 큰 폭으로 조정을 보일 거야.  그러니 우리나라 경제가 어떻겠어?  기업은 투자를 하지 않고 점점 직원을 뽑지 않겠지.  게다가 사회 전반적으로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돼서 인원이 감축될 것이고 그런 면에서 서비스직은 제일 먼저 힘들어질 거야.  그러니 이곳에서 버틸 만큼 버티는 것도 방법이야."  동료의 조언은 계속된다.


<손을 그리는 손 / 에셔>


막상 퇴사를 결심하고 보니 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친구들을 만나거나 모임에 가서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새롭고 재미있는 영역을 확인하게 되고 나의 강점과 장점이 이런 것들과 융합되었을 때 그 결과가 궁금해졌다.  그래, 해보자.  세상에 그만두기 가장 적합한 시기는 없다.  경기가 호황이니까 네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도 된다는 말을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다.  인생은 도전이고 그 안에서 역동적인 삶이 가능해진다면, 무엇보다 내가 행복하고 보람을 찾게 된다면 충분하다.  잠시만, 아주 잠시만 오늘 통장잔고에 좌절하지 말자.  커피 한잔 마실 수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해보자.  


이제 직장까지 가는 1시간이 부담스럽지 않게 되었다.  동료와의 마찰이나 거래처가 주는 스트레스가 더 이상 나를 흔들어 놓지 않는다.  <퇴사>가 주는 힘은 대단하구나.  생각해 보니 <퇴사>는 마지막을 의미하고 그 마지막에는 또 다른 <시작>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다시 느껴지는 <조용한 흥분>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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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일요일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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