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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서 Dec 13. 2020

우리 엄마가 늙으셨다.

나에게도 그날이 오겠지.


외할머니는 83살 되는 해에 돌아가셨다.  평소에 체질이 허약하거나 지병을 앓고 계시지는 않았지만 노인의 하루하루는 언제 변할지 모르는 날씨처럼 위험스럽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우리 가족 누구도 할머니의 죽음을 상상하지 못했었다.  연세는 제일 많은 어른이지만 그냥 그 상태로, 설령 우리가 할머니와 같은 나이가 되어도 철인처럼 곁에 계실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첫째 같은 둘째 딸이었다.  할머니가 하시는 모든 일에 엄마가 빠지는 일은 없었다.  

그러셨는데, 장례식장에서 상복을 입고 차분히 손님을 맞고 계신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을 때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더 큰 두려움으로 몸이 경직되었다.  이제는 엄마가 죽음의 제 일선에 서게 되신 것이다.  물론 시간의 흐름을 따라간다면 말이다.  순간적이긴 했지만 간담이 서늘해지고 머리카락이 쭈뼛거리는 경험이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났다.  의젓하지 못한 나는 동생들과 달리 서운한 일이 있으면 성난 파도가 되어 엄마의 몸에 힘껏 부서지며 살아왔다.  승자는 언제나 나였다.  세상 어느 전투에서도 100전 100승 할 수 있는 상대는 엄마밖에 없으니까.  그때마다 단맛과 쓴맛을 동시에 느끼며 한동안 자책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장 많이 울고 오랫동안 힘들어할 자식은 내가 될 것이다.


퇴근하고 돌아오니 따뜻한 온열매트에 앉아서 TV를 보고 계신다.  내일 아침밥은 김밥인지 부엌에는 재료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오늘은 알토랑 어느 셰프님이 김밥 싸는 비법을 전수해 주신 모양이다.  엄마의 핸드폰 갤러리에는 유명 셰프님이 알려주신 레시피 화면 사진이 반 이상을 차지한다.  어느 날 요리프로를 보면서 혼잣말인지 질문인지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예전에는 내 맘대로 주물럭주물럭 만들어서 니들이 먹느라 참 고생했겠다."  

사실, 우리 엄마의 음식은 맛있기로 유명하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오다가 무심코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조용히 뒤쪽에 비스듬히 앉았다.  틀니를 빼놓으셨는지 웃음소리가 다르다.


"엄마 저녁은 먹었어?"

"어, 오늘 추웠지?"

"아니 괜찮았어."



휘어진 등을 따라 올라가다가 가늘어질 대로 가늘어진 푸석한 머리카락들 사이로 따스한 빛이 촘촘히 박혀있는 것을 보았다.  바닷속 산호초 같다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래, 아직 멀었다.


"엄마, 우리 염색방에 언제 갔지?"

"어? 어머머 청경채가 김밥에 들어가네.  세상에 맨날 시금치만 넣을 줄 알았지 그게 들어갈지 생각도 못했네."

"염색 안 할 거냐고."

"어어,,, 해야지,,, 그렇잖아도 너한테 물어보려고 했어."

"알았어, 이번 주말에 가요."




우리에게도, 엄마와 나에게도 언젠가는 그날이 올 것이다.  노인의 하루는 <예민한 날씨>와 같음을 알고 나서 아주 가끔은 내일이 그날이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된다.  건강한 엄마를 두고 나쁜 생각을 한다고 야단을 맞을지 모르지만 조금씩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 왔었다.  

당신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느끼게 해 드리고, 엄마의 세상은 참 아름다웠다는 생각을 갖도록 도와드리고, 호기심 많은 분이니 아직 미쳐 보지 못한 곳도 함께 경험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맛있는 음식 먹고, 많이 웃고, 많이 대화하고.... 또 뭐가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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