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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서 Dec 20. 2020

나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낸다

아날로그 갬성


10년쯤 전부터 매년 12월 둘째 주가 되면 나는 크리스마스 카드 겸 연하장을 준비한다.  굳이 빠른우편으로 보낼 필요가 없으니 주소지를 불문하고 380원짜리 일반 우표를 붙이는데 배송 성공확률은 95프로 이상이다.  

해외로 보내는 카드의 경우에는, 우표를 구매할 때 해당 국가의 일반 우표요금을 미리 알아봐서 금액이 모자라지 않게 붙인 후에 국내용과 함께 길거리 빨간 우체통에 넣는데 지금까지 실패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연말 우편물량이 대량으로 몰리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만족스러운 결과라고 생각한다.

간혹 이사 등의 이유로 반송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는 새로운 주소지를 받게 되면 다음 해에도 보내고 그렇지 않으면 아쉽지만 포기한다.


수신자들 중 일부는 받기만 하는 카드가 부담이 되는지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SNS로 전하기도 하고 커피나 피자 쿠폰 등을 보내오기도 한다.  물론 답장을 기대하지 않고 나의 안부와 여전히 관계가 유지되고 있음을 알리는 행위지만 몇 년 동안이나 카드를 받았다는 암시도 없을 때는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주소가 바뀌지 않았으니 올 연말에도 빼먹지 말고 보내야겠다'라는 생각이 스친다. 

사실 올해는 보내지 말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코로나 핑계로 더욱 격조했던 1년을 연하장이 메워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주 가벼운 카드 한 장이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훈훈하게 보낼 기운을 줄 테니 말이다.




10여 년을 보내다 보니 매번 작년에 팔다 남은 재고를 다시 판다는 생각이 들만큼 디자인이 고만고만하다.  산타크로스 등 크리스마스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이나 새해맞이 카드는 식상해서 색다른 것이 없나 며칠 동안 매장들을 돌아다녀 봤지만 딱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일반적인 압화 카드를 선택했다.  

내가 보낸 압화카드


대량도 아니고 주소는 출력을 해서 붙이니 시간 소모가 크지 않겠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거의 하루를 집중해야 한다.  혹시 이사 갔다는 소문이 있는지 확인하고 아예 소식이 끊어진 사람이나 해외이주 등을 신경 쓴다.  더 중요한 것은 받는 사람과의 관계가 아직 작년 수준인지 점검하는 것이다.  간혹 좋지 않은 감정의 골이 깊어지거나 개선의 여지가 없는 사람들은 제외되기도 하는데 올해는 오히려 추가된 사람이 둘이나 있다.


주소를 제외하고 전부 손글씨로 쓰다 보니 이 부분이 제일 시간이 많이 걸린다.  각각의 카드는 상대방을 생각하면서 쓰기 때문에 내용이 전부 다르다.  오탈자를 수정테이프로 지우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글을 쓰기 시작하면 마지막까지 한 번에 쓰는데 그렇다 보니 문맥의 매끄러움이나 마지막 인사, 모자라거나 넘치는 글 처리하기 등 신경 쓰이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카드를 선택할 때 크기는 매우 중요하다.


올해는 작년과 다르게 스티커로 된 바코드 우표를 사게 되었다.  우체국 직원에게 일반 우표를 달라고 해도 "그냥 이거 붙여도 돼요."라고 짧게 말하면서 등을 돌려 버렸다.  바코드는 등기우편물에서나 보던 거라 어색해서 우물쭈물하다가 직원의 단오한 태도에 '그래, 한번 해보지 뭐.'라며 물러나서 카드를 테이블 위에 늘어놓고 붙이니 편하긴 했다.


이탈리아와 미국은 둘 다 보내지 못했다.  이탈리아에 사는 친구는 코로나 때문에 지방 한적한 곳으로 내려가 있으니 보내지 말라고 연락이 왔다.  그 대신 자신이 그쪽에서 보내보겠다고 하니 10년 만에 처음 답장을 받아볼 수 있겠다.  미국은 코로나로 우편서비스가 중단되었다고 한다.  국경은 사람에게만 닫힌 게 아니었다.  겨우 카드 한 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우편물의 내용과 상관없이 보낼 수 없다는 말에 실망스러웠지만 결국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 모든 것이 멈출 수 있다는 것에 코로나 19가 새삼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에는 카톡, 인스타, 페이스북 등 SNS에 밀려서 이메일도 잘 보내지 않는다고 한다.  손카드 정도야 각종 청구서나 광고물 속에 묻혀서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일도 있을 테고, 받는 사람도 나만큼 즐겁다는 보장도 없으니 그만해야 할까 생각도 한다.  게다가 받기만 해서 미안하다는 답을 들을 때면 부담스럽다는 표현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그렇지만 카드는 여전히 팔리고 있고, 이는 누군가는 여전히 보내고 있다는 뜻이니 내가 그중 일부여도 좋겠다는 생각에 못 이기는 척 계속하고 있다.  그러니까 나를 위한 '카드 보내기'인 것이다.


올해 나의 마지막 일정은 이것으로 끝났다.  이제 잘 받았다는 문자나 손 편지 답장 그도 저도 아닌 침묵의 시간이 대략 일주일 정도 지나면 그야말로 2020년은 막을 내리게 된다.  


2021년에는 디자인이 쌈박한 카드를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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