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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서 Dec 27. 2020

기  도

초등학생의 자서전 쓰기 결심


책이라고는 교과서와 몇 권의 동화책이 전부였던 어린 꼬맹이가 엉뚱하게 자서전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던 사건이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어느 날, 나는 있는 힘껏 학교로 냅다 달려 나갔다.  부리부리한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정면으로 나를 내려다보던 아빠도 당황했는지 서둘러 신발을 꾀고 "너 거기 안서?"라고 소리를 치셨다.  그날따라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아침부터 친구들이 가진 장난감을 사달라고 졸랐는데 반응은 물론 예상한 대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차피 얻어내지 못할 바에 찔러라도 보자는 심보였던 것 같다.  학교는 키 작은 아이 걸음으로 15분 넘게 큰길로 쭈욱 뛰어가다 보면 중학교가 있었는데 그 옆에 오도카니 서 있었다.  집에서 가는 길은 두 가지다.  나는 꼬불꼬불하고 사람이 없는 뒷길 보다 넓게 직선으로 뻗은 큰길이 만약에 하나 붙잡혔을 때 조금 더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움직이면 아빠가 찾기 어려울 테니까.   지금 생각해 보니 꼬마 치고 꽤나 배짱 있고 민첩했다.    


아빠는 아주 무서운 분이었다.  깊은 병이 들어 하루 종일 집에만 계셨지만 동네 사람 모두에게는 사랑받았고 집에서는 넘치는 돈을 벌어오는 가장처럼 위세가 당당했다.  고양이 앞에 쥐 신세인 엄마와 우리 자매는 집 안에서 까치발 걸음으로 움직이거나 눈에 띄지 않게 하려고 좁은 공간 구석에 자리를 잡기도 했다.  물론 기분 좋은 날도 있었다.  가끔 아빠가 흥이 날 때면 유행가를 크게 부르셨는데 실력이 얼마나 좋은지 나도 모르게 서운한 마음이 사라지기곤 했다.  노래 실력만큼이나 목소리도 성우 같아서 동네 사람들은 아빠와 대화를 하면 홀딱 빠져 버린다고 했다.  


역시 우리 아빠다.  얼마나 배짱이 좋으셨는지, 다른 집 같으면 인형 하나 사주지 못하는 형편이 미안해서 어떻게 해서든 아이를 달래줄 텐데 말이다.  (어차피 못 사줄 거니까) 그 잘생긴 얼굴과 좋은 목소리로 당당하게 큰딸에게 화를 내려고 했는데 이놈이 다람쥐처럼 학교로 내달리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으니 잡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하늘까지 닿았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학교 도착하기 전에 만나서 다짐을 받겠다고 슬리퍼만 신고 뒤쫓아 나오셨을 것이다.  나는 그의 딸이다.


교문을 지나 실내화를 갈아 신고 교실로 재빠르게 뛰어가 자리에 앉는데 성공했다.  그리고는 기도를 했다.  인형은 없어도 되니 아빠한테 혼나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아빠는 정말 두려운 존재였다.  그 힘은 어디서 나는 건지 그 눈매는 어느 조상님을 닮은 건지 호랑이가 어흥하는 것 같기도 하고 천둥이 번쩍 치는 것 같았다.  그러니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까지 아빠의 화가 풀리지 않는다면 나는 엄마가 구해주기 전에는 죽은 목숨이다.  

<알브레히트 뒤러 - 기도하는 손 >


"하느님 제발 집에 돌아가면 아빠 화가 풀려있게 해 주세요." 두 손을 무릎 사이에 끼고 고개를 숙인 채 화살기도를 했는데, 그게 불과 2,3분 지났을 뿐인데, 눈을 떠 보니 아빠가 내 앞에 떡하니 서 계셨다.  

맙소사!  순간 엘사의 얼음 왕국처럼 나와 내 주위는 꽁꽁 얼어붙어 버렸다.  미쳐 입을 다물지 못해서 자꾸만 차가운 바람이 폐로 밀려들어왔다.  눈도 깜빡이지 못하고 굳어있는 나를 보더니 아빠는 드디어 움켜쥔 두 주먹을 피고 "이따 집에 가서 보자"라며 휙 뒤돌아 나가셨다.  마디마디 풀리지 않은 분노가 뒷모습에서 연기처럼 뿜어져 나왔다.  '우리 집 형편에 어디서 인형을' 이 말이 발도장이 되어 내딛는 걸음마다 복도 바닥에 찍히는 것 같았다.


"집에 가면 분명히 난 죽었다."  친구가 아빠와 나를 번갈아 보고 있는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 내 인생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  이다음에 크면 글을 쓸 거야.  내가 얼마나 불쌍하고 슬프게 살았는지 자서전을 꼭 쓸 거야.  아빠가 나한테 화낸 거 전부 다 쓰면 사람들이 같이 슬퍼해줄 거야. 내 인생은 로미오와 줄리엣보다 슬프고 장발장보다 씁쓸하니까.'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내게 두 작품은 세상에서 가장 비극적이었기에 때문에 내 결심을 위한 훌륭한 수식이 되기 충분했다.   




만약, 아빠가 큰길을 이용해 나를 따라오셨다면 자서전을 쓰겠다는 다짐을 못했을지도 모른다.  분명히 학교 도착하기도 전에 뒷덜미를 붙잡혀서 집으로 돌아와 단단히 정신교육을 받아야 했을 것이다.  

억울했다.  친구들도 있는 인형을 사달라고 했을 뿐인데, 기대하지도 않았고 인형 이름을 말이라도 해봐야 했기에 용기를 낸 것뿐인데 내 뒤까지 쫓아 오신 건 너무하셨다.  그래서 초등학교 2학년 일생일대의 비극적인 사건을 세상에 알려서 아빠에게 대항하고 싶었다.  그날 눈물은 흘리지 않았던 것 같다.  친구들이 있으니까 울 수도 없었다.  너무 어려서 정확히 표현해 내지 못했지만 내 자서전은 미래에 훌륭한 도구 혹은 무기가 될 것 같았다.


2021년 새해에는 좀 더 깊이 있는 기도를 한다.  아빠 덕분에 글이라는 좋은 친구를 얻었으니 우정이라는 꽃을 피워서 씨앗을 세상에 널리 펼쳐 보이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두세 평짜리 작은 방 컴퓨터 앞에 앉아 쓰는 글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입꼬리 살짝 올라가는 미소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내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닌 글이 되어달라고 기도한다.  

하늘에서 부리부리한 눈에 힘을 주며 내려다보실 그분에게도 내 글이 보이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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