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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서 Jan 04. 2021

키멍이 부른 글

1월 1일이 별거라더군!


게으른 사람에게는, 얼굴이 쭈구렁 쭈구렁 늙어간다고 투덜대면서도 보습을 위해서 수분 크림을 바르거나 마사지를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8시간의 노동 덕분에 하루가 길다고 느끼면서도 365일 12개월이 화살처럼 빠르다고 아쉬워하는 것은 시간을 쪼갤 계획이 없는 사람에게는 양심의 문제이다.  그러니 1년이 하나의 덩어리로 느껴지고 뭔가 훅 빠져나간 듯 가슴에 휑한 구멍이 남아도 그러려니 생각해야 한다.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 스피노자

물론 1월 1일이 지구가 멸망하는 날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이 한 살 더 먹는 게 두려운 사람들에게 그리 반가운 날은 아닌 것 같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앞으로 평생 1월 1일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12월 32일, 12월 366일 이렇게 표기하면 기분이 좀 나아질까?  고개를 숙이고 키보드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철학자 스피노자가 생각났다.  그는 세상의 종말이 올 때조차 희망을 잃지 말자고 했다.  사실은 희망을 잃지 말자는 계몽적 멘트보다는 다른 사람과 가치관이 다르기에 힙쓸리지 않겠다는 다짐일 것이다.  그럼 뭐,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계획하고 또 실천할 계획도 열심히 세울 때 나는 그저 나의 길을 가면 되는 건가?  예컨대 지난 수년 동안 지속된 루틴을 올해도 여지없이 계속하는 것 말이다.  책은 몇 권 사두되 읽지는 않고, 적금은 들지만 다른 투자는 하지 않고, 그러므로 그대로 나다운 시간들을 보내는 것 등등


내가 뭐라고 1월 1일을 거부하겠는가.  그냥 유별 떨고 싶지 않은 것이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과 같은 날이라는 얘기다.  이런 나를 누군가 "너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정의 좀 내려줬으면 좋겠다.  가끔은 나 자신이 까칠한 것도 아니고 현실 도피자도 아니고 대체 뭔지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부정적이지도 않고 그저 그렇다는 것이다. 


할 머 니

계획과 실천, 이 세상에 그 둘 만큼 인생행로를 기름지게 할 단어는 없다.  그런데 완전히 다르게 사셨던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생각났다.  존경하는 인물 가장 위에 늠름하게 우뚝 서 계시는, 내가 아는 한 이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노동을 신성하게 생각하는 분이셨다.  할머니는 <1월 1일>이라는 '숙어'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셨다.  글자 그 자체로 주는 의미보다 함축적이고 은유적인 많은 것들이 내포된 <1월 1일>에는 그저 시크하게 아침 일찍 떡국 한 그릇을 훌훌 털어 드시고 밖으로 나가셨던 분이었다.  

"계획도 시간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지" 할머니 말씀이다.


모든 시작에는 끝이 있는 법이다.  1월 1일에 새해를 열었으니 12월 31일에는 그 해를 정리하고 다시 새로운 날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내 할머니는 당신이 태어나신 날 삶이 열렸으니 당신이 돌아가심으로써 마감될 뿐이라는 지론을 가지셨다.  그러니 중간 정산은 큰 의미를 두지 않으셨다.

어느 해 마지막 날에 떡을 썰고 계신 할머니 곁에서 여쭤보았다. 

"할머니 내일 떡국 먹어요?  그럼 한 살 더 먹지?"  

"오냐, 널랑은 한 살 더 먹고 더 이뻐지거라.  좀 낫겠지?"

"........"



인지 세포와 물리적 세포는 반비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이루는 세포들이 늙어가고 있다.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는 위로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제가 다르고 오늘도 다르다.  나날이 성장하고 확장되고 있는 인지적 세계와 별개로 물리적 세포들은 너무 열심히 계획대로 늙고, 죽어가고 있다.  그러고 보니 그 둘은 반비례 관계이다.  다행인 것은 내가 인지적 세계의 종착점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히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니까.  그러니 번거롭게 굳이 1월 1일의 사소한 감정들을 만들 필요가 없다.  분명히 적어두지만 나는 염세주의자나 비관주의자가 아니다.  

그저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이라는 이야기다. 


낮에 동생이 놀러 와서 둘이서 분식점에 갔다.  떡볶이 1인분을 사고 어묵을 2개씩 먹었다.  소스가 달아서 내 입맛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해 왔는데 오늘은 조금 다를까 기대하며 사 먹었다.  그러나 그 떡볶이는 어제처럼 오늘 새해 첫날도 달았고, 내 입맛과 비슷한 주인이 분식점을 인수하지 않는 이상 내일도 달 것이다.  그렇게 해도 주인장은 월세를 맞출 수 있고 단맛이 강한 떡볶이를 좋아하는 손님들이 찾아줄 테니까.   떡볶이 주인의 새해는 어떤 각오일까?  12월 31일과 달리 1월 1일은 설탕을 한 스푼 덜 넣어야겠다거나 사과를 갈아 넣는 것으로 소스의 품격을 올리겠다는 생각을 했을까?  이럴 바에는 12월 31일에도 그 집 떡볶이를 사 먹어서 비교군을 만들어 볼걸 아쉽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리스트를 만들어 보았다.  혹시나 덩어리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좀 나아질까 기대하면서 하나씩 적어보았는데 무려 7가지나 되었다.  많은 인문학 서적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실천하라고 조언하길래 '이게 뭐라고'라며 웅얼거렸는데 7가지나 된다니 새삼 놀랍긴 하다.  뭔가 실눈 하나쯤 살짝 뜬 기분이랄까?  할머니가 하신 "널랑은 내년에 이뻐지거라."라는 말씀이 생각났다.  무슨 뜻일까, 혹시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함축적인 의미가 숨어 있지는 않을까.  당신의 시간은 언제나 같은 모습이었으니 손녀인 나에게는 무언가 다른 비밀을 알려주진 않으셨을까.

.......

다시 조용히 키보드를 멍하니 바라본다.  


'아가야 너는 거울도 보고 살아라, 너도 세상도 아름답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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