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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서 Feb 22. 2021

동서남북 재테크

나도 알지만 말이야.


...........

"어제 OOO 주식이 상한가 갔는데 봤어요?"

"단톡 방에서 아침에 OOO 사라고 알람이 왔는데 못 샀어, 에효 20%나 올랐네."

"단타 하는구만, 차라리 삼성전자나 현대전자를 사서 묶혀놓는게 좋지 않아?"

"현명씨 수익 엄청나겠는데? 역시 삼성전자를 샀어야 되나?"

"어제 코인중에 리플은 800원까지 올랐다가 빠졌어요.  우와, 그쪽은 완전히 투전판이더마안~"


경험이 많은 직원은 파생상품이니 뭐니 좀 깊은 이야기를 하고 이제 막 주식계좌를 개설한 직원은 이런 세계가 있다는 것에 서슴없이 경이로움을 표현한다.  결혼 1년 차 직원은 경기지역에 아파트를 청약받아 계약금과 관련 업무처리에 바쁘지만 열심히 주식 단톡 방 소식을 날라다 주는 인간 메신저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직장에서 뿐만이 아니다.   지하철, 식당, 카페, 마트 등 장소를 불문하고 귀등으로 스치는 이야기도 재테크 이야기들이 많다.   <동학 개미>라는 단어가 생겨난 것을 보면 1인 1 스마트폰 시대에 걸맞게 1인 1 주식계좌를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나름의 루트로 <세상 돌아가는 시황>을 들어보니 증권사 객장에는 계좌 개설을 위해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어르신들 덕분에 장이 끝난 이후에도 마감을 못하고 있다고 한다.

하기야 제로금리가 계속되고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요즘에 재테크는 현실적으로 꼭 필요할 것이다.

그렇게 모두들 경제적 자유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1살 연하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언니, 코인 보고 있어?  

2016년~2017년 주변 사람들 분위기에 나도 덩달아 소액으로 코인 투자를 했었다.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많은 나에게 완전히 차원이 다른 새로운 시스템이 생긴다는 것은 실현 가능성과 상관없이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그 '신남'도 잠시 시장의 몰락(?)으로 스마트폰에서 거래소 앱을 지워버렸고 어디 가서 코인의 '코'만 꺼내도 한심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바람에 그냥 조용히 한때의 흑역사로만 간직해야 했다.

"나도 얼마 전에 앱을 새로 깔았는데 비밀번호를 잊어버리고 아무튼 좀 복잡해졌더라고.  너는 하고 있어?"

"아니 주위에서 얘기하는데 다시 해야 하나? 무서워서 쉽게 시작을 못하겠네."

"맞아, 그래도 소액이니까 그냥 재미 삼아 다시 들여다볼까 생각 중이야?"

"하기야, 기껏 백만원정도만 할테니까 말이야."



최근에 책 한 권을 샀다.  미국에서는 고등학교 필독서라는데 이 나이에 <곰브리치 서양미술사>를 읽겠다고 샀으니 내 생애 끝낼 수 있을까 싶다.  그런데 재테크 이야기는 여기저기 많이들 하고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대화의 중심에 서게 되는데 책이나 관심분야 이야기는 어디 나눌곳이 없다.  독서모임 등에 가입하면 되겠지만 주변머리가 없어서 쉽지 않고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고리타분한 사람이라는 눈치를 받을까봐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다.  동창회, 반창회, 전 직장 친구들 등등 어느 모임에서도 독서나 취미 혹은 새로운 것에 대한 이야기는 메인으로 대화 주제에 오르지 못한다.  재테크라면 누구나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하는데 다른 것들에는 호불호 때문인지 대화가 금방 끊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책과 함께 구입한 다른 재테크 관련 책 이야기를 꺼냈더니, 너도 그 책 읽었냐고 눈을 반짝이며 의자를 끌어당긴다.  

아하, 세상 사람 모두에게 물리적 심리적 공통분모는 <돈>이구나.


풍성한 대화 속에서도 주제의 편식과 관심분야에 대한 갈증은 최근에 계속 심해지고 있다. 

어느 날은 요즘 말로 <찐 대화>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면서 지하철을 탔다.  퇴근시간이라 열차 안은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었지만 요령껏  빈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이래 봬도 대중교통 경력이 몇 년인가 스스로 흐뭇해하면서 무심코 옆자리 승객의 스마트 폰을 보게 되었는데  나도 한 번쯤 유투버에서 봤던 유명한 경제 관련 전문가의 동영상이었다.  <돈>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사람도 하루 16시간 아니 꿈에서까지 24시간 애쓰고 있구나.  새삼스럽게 모든 인간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포함하여 인간은 정말 대단한 존재이다, 물론 긍정적으로 말이다.  




철저히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낭만주의적 사고를 갖고 살아간다는 것은 여기저기 부딪히고 상처 나는 마음을 감수해야 한다.  주식으로 돈을 벌어서 비싼 차를 샀다거나 부동산으로 대박을 쳐서 빌딩을 샀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우와, 좋겠다'하고 감탄을 하면서도 막상 그들의 행동 패턴을 따라 할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  그 대신에 '그래, 나는 나답게 사는 게 좋지.',  '모두가 맨 첫 줄에 설 필요는 없잖아.'라며 무대 조명을 어둡게 해버리고 만다.  나란 사람은 내가 가진 돈 혹은 내가 가까운 몇 년 안에 벌어들일 수 있는 총수입을, 80살까지 산다는 가정하에, 1/n로 나누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하는 편이다.  

물론 이 생각을 가족들과 나눈 적도 있는데  그럴 때면 여지없이 등짝 스매싱이 제대로 날아온다.  >파파팍<


배우 윤여정 선생님의 목소리 톤과 직접화법을 상상하면 이 대화가 3D로 다가올 것이다.

"넌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으이고 하여간."

"아니 생각을 해봐요, 난 운전을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이니까 차도 필요 없지, 게다가 액세서리나 가방, 보석, 옷 같은 것도 관심 밖이니까 ,,, 가끔 가까운 곳에 여행이나 가고 좋아하는 커피나 끊임없이 마실 수 있으면 되니까 큰돈이 필요 없잖아."

"그래서 그냥 그렇게 살겠다고?"

"아니 왜 아등바등 사냐고요, 그냥 내가 지금 가진 돈을 80세까지 쓴다면 한 달에 얼마 정도 나올까 계산해서 그렇게 사는 거지.  물론 건강을 위해서 노동은 하겠지만 큰돈을 벌겠다는 욕심은 애초에 어려운 거 아니야?

그럴 바에는 내가 하고 싶고 가고 싶고 행복한 거 찾으면서 사는 게 좋지 않냐고요."

"말 잘한다 너."

"다행히 나는 욕심이 없잖아요.  권력, 명예, 부,,, 이런 거 내 능력 밖이고 재미도 없다고요."

"그럼 넌 뭐가 재밌는데?"

"나? 나는 내가 재밌어.  내가 생각하고 움직이는 모든 것이 재미있고 신기해.  세상을 놀이처럼 살고 싶어."

"그래, 놀아라 놀아.  세상이 놀이터처럼 재미난 것만 있는 줄 아냐? 게다가 100세 시대라구"

"나도 <돈> 얘기 재밌다고요, 그런데 <돈> 이야기만 하는 건 재미없다고요.

나한테는 그것도 놀이예요.  물론 잃으면 열은 받지만 원래 놀이가 열도 받기도 하고 그래요."

"네가 그러니까 큰돈을 못 버는 거야. 그리고 니가 나보다 오래 살았어? 어디서 다산 노인네 얘기를 해 얘가?"

"아, 내 말이요"


'그래도 1/n은 포기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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