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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서 Mar 07. 2021

기억 소환

- 인도뱅갈로르숙소

"여행은 이제 다시는 가지 않을 거야, 이제 여행에 지쳤어."  

누가 가라고 등을 떠밀기라도 한 것처럼 한 달 만에 집으로 돌아와 식구들 앞에서 큰소리치며 선언을 했었다.  그로부터 몇 년 동안은 머리 위를 날고 있는 비행기를 올려다봐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그저 무미건조하게 저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답답하겠구나 생각할 뿐이었다.  물론 내 가족은 대환영이었다.  3박 4일 패키지도 아니고 혼자 다니는 여행을 좋아할리 만무했고 동생은 가끔 도대체 왜 그런 여행을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투털 대기도 했으니 잘됐다 싶었을 것이다.


언제나 내 주장은 이랬다.

"여행은 사치가 아니고 경험이야.  돈이 없고, 영어를 못하면 갈 수 없는 '그들만의 유희'가 아니라고.  게다가 아줌마 아저씨들은 패키지, 돈 있는 학생들은 자유여행, 이런 공식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요.   내 방식으로 여행을 하면 되는 거니까 플리즈, 내 여행에 대해서 제발 눈. 좀. 감. 아. 주. 세. 요."  

물론 그 후에도 몇 번인가 다녀오긴 했다.  그러나 마지막 여행만큼 치열하고 외로운 여행은 하지 않았다.     


코로나 환경으로 여행이 금지 <?>된 지난해부터 마음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발바닥이 간질거리고 둥둥 뜰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예전과는 다르지만) 여전히 자유로운 테마여행 목록들이 디지털 숫자처럼 머릿속에 나열되었다.  잠깐 그러고 말겠지 했는데 이번에는 손이 근질거려서 마지막 여행이 어떠했길래 극단적인 결정을 했던 것일까 궁금해서 사진들을 찾아보았다.




<인도 뱅갈로르 숙소>


후다다다다다~~~~~~~~~~~~닥,

아침 6시가 넘었을까, 게스트하우스 직원이 뜨거운 물이 한가득 찬 양동이를 들고 방문을 두드린다.  

'세상에 맙소사!' 누군가 내 머릿속에 하얀 페인트를 쏟아부은 것 같았다.

나는 잔뜩 화가 나서 인도 쪼리를 신고 4층 방에서 1층까지 다다닥 소리를 내며 뛰어 내려갔다.


"당신 약속하고 다르잖아, 아침에는 분명히 뜨거운 물을 준다고 했었다고."


"지금 줬잖아."


"무슨 소리야. 수도꼭지에서 뜨거운 물이 나와야지 저런 양동이를 주다니, 주인하고 얘기를 해야겠어!"


나의 구구한 설명을 못 알아듣는 모양이다.  인도에서 이방인으로 다니다 보면 종종 열등감 비슷한 걸 느끼게 되는데 딱 지금처럼 내가 원하는 것을 그들이 알면서 속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그렇다.  상황 파악을 못한 내 탓은 뒤로 미루고 어디서 나는 힘인지 절대 당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태권도의 <태>자도 모르는 1인이지만 저들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 테니 무시하지는 못하겠지.'


"나는 체크인할 때 뜨거운 물을 요구했고 당신은 오케이 했다고, 저런 통이 아니야.  당신 내가 거지로 보여?"


종업원과 객실 손님들이 모여들었다.  인도인들은 어딘가에서 큰소리가 나면 그 주위로 원을 그리 모양이다.  순식간에 내가 두 겹 세 겹의 사람들 속에 묻혀버렸고 이 싸움에서 이겨야만 했다.

옆에 서 있던 키가 큰 인도인 투숙객에게 다짜고짜 통역을 부탁했다.


얼마 후,

그 투숙객은 난감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더니 이렇게 말하는 거다.


"음... 미안하지만, 이곳은 뜨거운 물이 나오는 시설이 없어서 아침마다 양동이에 물을 받아 주고 있어.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다는데?"


이런,,,, 뜨거운 물을 쓸 수 있다는 주인의 말에 당연히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온다고 생각했었다.

헉, 이걸 어떻게 하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래도 나는 달려야 한다.'


"나보고 저 양동이 하나로 샤워를 하라고?  난 못해. 게다가 넌 어제도 뜨거운 물을 안 줬잖아?"

지배인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좋아, 그럼 하나 더 줄게, OK?"


이렇게 우리들의 싸움은 끝이 났고, 사진에서 보듯이 방으로 두 개의 양동이가 배달되었다.

<한 통 더 받은 뜨거운 물>


인도 사람들은 참 부지런하고 무엇이든 열심히 하나보다.  빨래를 부탁해도 청바지에 구멍을 내놓더니 물도 그냥 뜨거운게 아니라 그야말로 ㄸㄸㄸㄸ뜨거웠다.  결국 찬물을 아무리 섞어도 목욕하는 온도보다 높아서 물을 반통밖에 쓰지 못했다.  나머지로는 빨래하고, 빨래를 하고 또 빨래를 하고, 계속 빨래를 하고...

'아, 벌 받은 건가?'

<나는 이 여행지에서 무엇 때문에 전투적인 사람이 되는 것일까.>  

좀처럼 잠이 들지 못했다.




'내 안에 나'로 가득 찬 여행이었다.  혹시 바가지를 쓸까 봐 물건을 살 때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버스 안에서는 잔돈을 주지 않는다며 안내원과 시비를 했다.  전화 부스에서 한국으로 전화를 하고 요금을 지불할 때는 여자 계산원의 지긋한 웃음에 뭔가 뒤끝이 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거침없이 손을 벌려 돈과 물건을 요구하는 아이들은 귀찮기만 한 존재서 가까이 오는 것에 예민해졌다.  

식당에 가면 힐끔거리는 현지인들의 눈이 불편하다며 굶기 일쑤여서 1달 여행 동안 9kg이 빠졌다.  

사치스럽게 '나를 찾다'는 대단한 명제를 가지고 떠난 것은 아니지만 잔뜩 웅크리기만 할 뿐 사람들, 자연, 그리고 상황과 교감하지 못하고 내 안에 갇혀 있기만 했었구나.


다시 여행을 하고 싶다.  

나를 어떤 상황에 놓아두고 얼마나 성장했는지 또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생각, 기분 좋은 설렘, 잊혔던 낯선 향수들이 오랜만에 코끝을 자극한다.  여행은 향기를 갖는다고, 그 끝에서 나를 확장시킬 수 있다고.

 

내 앞에 놓인 <불상>은 그때와는 다른 말을 할 것이다.  수백, 수천 년 전에 어느 석공이 만들었을 <불상>이지만 내게 말을 하는 건 석공이 아닌 석공을 통해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같은 불상 앞에서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 나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분명히 낯 간지러울 테지만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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