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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서 Aug 14. 2021

2021년

몰아 쓰는일기


코로나가 한창인 탓에 널찍하게 배치된 테이블 중 하나를 차지한 동료들이 양꼬치를 집중해서 굽고 있었다.  

나는 2시간 전에 퇴근을 했지만 일부러 회식 장소에 가지 않고 주변을 빙빙 돌다가 늦게 식당으로 들어갔다. 

흘끔 내가 자리에 앉는 것을 본 식당 직원은 유리컵 하나를 가져다주었다.  

 '이 맥주잔을 비우고 잔뜩 쌓인 양꼬치가 사라지면 나는 자유가 된다.'



<파이어(Fire) 족> 경제적 자유를 얻은 조기 은퇴자

솔직히 나는 진정한 의미의 파이어족이 아니다.  경제적 자유는커녕 당장 수입 없이 몇 달을 버틸 수 있을지 

고민되는 처지다.  다행히 검소한 편이라 기본적인 생활만 되면 그 안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으니 생각보다

오래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삶의 질이란 것이 다행히 주관적이라 스스로에게 우기면 될 일이다.


그동안 내가 가진 통장잔고를 앞으로 살아갈 날들(장수에 욕심이 있어서 90?)로 쉼 없이 1/N 했었다.  

계산기를 찾을 때부터 허망한 결과는 알고 있었지만 이러다가 정말 정년퇴직까지 밀려버릴 것 같았다.  

나와 나와의 싸움이다.  가늘고 길게 사는가, 아주 짧고 굵게 쉬다가 다시 미래를 도모하던가.

물리적인 것은 그나마 심리적인 저항에 비하면 순한 맛이 아니던가.

 인생의 쉼표를 결정하는데 가장 고민스러웠던 것은 그래도 되는가 하는 자기 설득력의 부족이었다.  

그동안 살아온 나를 구성하는 사회 속엔 휴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번에는 정말 그래도 되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답을 찾아야 했다.  


성장해야 하는가?  

이미 중년에 접어든 나이에 내게 성장이란 어떤 의미인가?

<의미>가 있어야만 진정한 인생인가?  일테면 <선 생활, 후 의미> 이렇게 순서를 좀 바꾸어 보면 어떤가?

나는 어떤 인간으로 나와 마주하고 싶은가?


내 질문은 너무 추상적인 것이라 머리만 무거울 뿐이었다.

<The heaviest burdens that we carry are the thoughts in our head.> 



<이유는 궁색하고>

몇 달 전부터 허리가 아파왔다.  밤에는 다리가 저려서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지하철에서는 주저앉고 싶은 많은 순간이 있었다.  당연히 업무의 질이 떨어지고 스트레스가 심해졌다.

굳이 칼라를 구별하자면 나는 블루칼라이다.  업무가 겹치기는 해도 내가 일하는 공간은 주로 매장이었다.  

하루에 수백 명의 손님이 들어오고 나가고 많은 중간 업자들이 물건을 실어 재고를 채워주는 곳이었다.  

소비자와 생산자 그리고 중간업자와 택배기사님들, 그냥 전쟁터 같기만 한 하루가 화장실 갈 시간도 주지 않고 내게로 달려들었다.  그렇게 수년을 일했더니 몸이 망가졌다.


퇴직 의사는 2달 전 밝혔다.  코로나로 인해 구직난이 한창이라 쉽게 해결될 줄 알았는데 사용자 편에 서면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매니저라고는 하나 특별한 능력이 필요하지 않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했는데 거의 한 달 동안 대표님은 노코멘트였다.  나는 퇴직이 절실했다.  결국 간곡하게 후임을 구해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난 후에야 다시 한 달가량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하셨다.

그렇게 마지막 맥주잔이 내 앞에 놓이게 된 것이다.  


가족과 지인들은 앞으로 뭐하고 살 거냐고 거칠게 다른 계획을 물었다.  누구나 아프고 치료하고 그렇게 직장을 다닌다고 내 고통을 폄하했다.  그들의 속내를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다만 관심 밖이었다. 

나는 세상에 나올 때 계획하고 나왔냐고 항변했다.  그들은 너의 의사가 정 그렇다면이라는 단서를 달고 조용히 물러났다.  한마디만 더 하면 아예 깨물어 주려고 두 주먹을 쥐고 있었는데 그 점에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고 눈물이 났다.  

퇴직과 휴식도 계획이라고 무시하지 마!



<그 이후>  

처음 2주 동안은 매일 10시간 이상 숙면을 취했다.  밥을 먹고 난 후에도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서 꾸벅꾸벅 졸았다.  한의원과 정형외과를 오가며 디스크 신경 치료를 받았다.  갑상선이 문제가 있는지 피검사를 하고 동네 맛집에 가서 천천히 좇기지 않고 식사를 했다.  

한 달이 지날 즈음 <걷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30분만 걸어도 멀미가 나고 머리가 아팠다.  지금은 1시간은 충분히 걸을 수 있다.  

차차 사회로 연결되는 스위치에 On을 넣고 싶어서 자원봉사 사이트를 둘러보았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4시간 동안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아직 몸에 무리이긴 하지만 즐겁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 때에 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었다.  


<번아웃을 기다리지 마라>

힘들면 멈추라.  

어금니가 금이 가도록 참았던 시간이 있었으니 나는 오늘 정당하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까지 해야 지나올 수 있었던 시간이었는지 의문이 든다.

인생 선배들은 더 어려운 상황에서도 쉬지 않았다고 배부른 소리 한다고 눈을 흘기시겠지만 나는 어린 후배들에게 힘들어도 참고 견디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목표를 위해 열심히 달리는 중이라면 그냥 계속 가라.

가다가 힘들면 잠시 무릎을 구부리고 숨을 크게 쉬어라.

그래도 힘들면 잠시 쉬고 

더 어려우면 그만두어도 좋다.

혹시 관성의 법칙 때문에 걸음이 멈춰지지 않으면 바깥세상에 수건을 던져라.

포기하는 용기가 결국 더 많은 새로운 날들을 가져다줄 것이라 확신한다.


끝과 시작은 같고 지구는 둥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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