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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서 Dec 05. 2021

첫 수업

한국어 수업을 시작했다.


한국어 교원 자격증을 받고 2년이 지났다.  

K-POP, K-MOVIE, K-FOOD... 

K는 이제 KOREA를 상징하는 알파벳이 된 것 같다.  이 작은 나라에서 쓰는 언어가 덩달이 인기를 얻고 

있으니 영어 사대주의 때문에 잔뜩 움츠렸던 날들을 생각하면 상전벽해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싶다.

어쨌든 나도 그 분위기를 타고 언젠가 사용할 일이 있겠지 싶어 자격증을 서랍 속에 고이 모셔 두었다.  


무작정 퇴사를 치르고 두어 달이 지난 후부터 슬슬 세상 냄새가 그리워졌다.  그렇다고 정시 출퇴근을 시작하고 싶지는 않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자격증이 있으니 우선 관련 봉사활동을 해보기로 했다.

1365 자원봉사 사이트에 매일 접속해서 교원 관련한 자리가 있는지 검색을 했다. 

새터민, 다문화 가정, 근로자 등 간간히 필요한 게시물들이 올라오긴 했긴 했지만 특정한 조건이 붙어있거나

위치 때문에 접근성이 떨어져 선뜻 지원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2달이 지났을까, 이태원에 있는 모 센터에서 <당 기관이 운영하는 한국어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1:1 개인 수업을 진행할 기버(Giver)를 모집한다>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1주일에 한 번 온라인 수업이라는 조건은 시간적으로도 큰 부담이 없어서 좋았다.

물론 걱정도 있었다.  수업 경험이 없는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혹시 잘못 가르쳐서 오히려 한국어 실력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해서 주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단은 서류를 넣고 걱정하자는 생각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약 1달 후, 인도에서 온 여성과 매칭이 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센터에서는 오픈한 단톡방을 통해 버디와

연락을 하고 카카오 페이스톡으로 수업을 진행하라고 했다.  그 외에 버디의 개인정보는 전혀 주지 않았다. 

왠지 1회용 종이컵 취급을 당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이유가 있겠거니 받아들이기로 했다.  

온라인 수업이니 개인 전화번호 교환 따위는 어쩌면 불필요한 일인지 모른다고 위안을 삼았다.


드디어 센터로부터 첫 수업에 필요한 가이드를 받았다.  

소개팅에서 처럼 간단한 자기소개와 취미, 가족, 직업 등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대답하다 보면 1시간은 금방 

지나갈 것이다.  초급이라는 버디는 내 말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버디 실력에 따라 문장의 난이도를 맞춰야 하니 첫 수업 동안 나는 집중해서 버디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어떤 나라의 언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그 나라를 더 잘 알고 싶다는 생각을 넘어 그 언어로 생각하고 말하고 

기회가 된다면 경제적인 이득을 얻고 싶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국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가 있는 사람인가

궁금한 생각이 들어 첫 만남이 더 기다려졌다.   


첫 수업은 페이스톡으로 1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그냥 웃음이 나왔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나와 버디는 화면을 통해 서로 웃었다.  

그냥 좋았다.  인사를 해야 되는데 화면에 보인 그녀 모습에 그냥 웃기부터 했다.

"제 한국어 선생님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행복했다.  

잠깐의 인사를 나눈 후 다음에는 만나서 수업하자고 해버렸다.  그녀는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채식주의자인데  한국에서 사는 1년 2개월 동안 식사 때문에 고생을 너무 많이 했다고 한다.  

안타까웠다.  사실 한국은 채식주의자용 식재료가 넘쳐나는 곳이 아닌가.    

유튜브에서 비건용 한식 채널을 찾아 보내주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도와주겠다고 했다.  

말하기 실력 향상을 위해서는 인도의 문화나 역사를 설명해 달라고 했다.  

본인이 알고 익숙한 것을 설명하는 것이 학습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인도 여행 경험이 있고 인도 문화에 관심이 많으니 당신이 이야기해주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고 

흥을 돋구었다.   그렇게 우리는 6회째 수업 동안  2번의 온라인 수업과 4번의 오프라인 수업을 하게 되었다.


*****


2시간이 넘는 오프라인 수업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내 경험의 레이어를 한층 더 쌓았다는 생각,  

여행이 아님에도 새로움을 만나고 낯선 풍경으로 나를 들이밀었다는 생각이 짜릿했다.

기대하지 않던 어느 날 창밖에 첫눈이 소복이 내리면 팔에 힘이 스르로 빠져나가는 것,

떨리는 시작이었다.


"질문이 있어요, 한국에서는 자식이 부모와 다른 종교를 가져도 되나요?

"네, 물론이에요.  종교가 같으면 좋아요, 그러나 달라도 문제없어요."


"선생님은 가톨릭인데 왜 절에 갔어요?

"저는 가톨릭 신자이지만 부처님을 존경해요.  그는 훌륭한 철학자라고 생각해요."


삼성동 도로 한복판은 찬바람이 유난히 맵다.

"여기는 강남보다 큰 건물이 없어서 바람이 더 강해요."

나는 별걸 다 알려주는 기버이다.


노트에 단어를 끄적이다가 버디가 물었다.

"혹시, 수업이 모두 끝나도 친구가 될 수 있어요?"

"그럼요, 여기 제 전화번호예요."


*****


10주가 지나면 다시 새로운 버디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 나는 다시 설레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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