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붕을 이야기하기엔 너무 섣부르다.
코로나를 견디며 지나온 2-3년 동안 웹캠, 삼각대, 마이크 등 촬영 장비의 수요가 급증했다고 한다.
물론 줌 수업이나 화상 회의가 보편화된 측면도 있지만 내 주변에서도 크리에이터가 되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이 있으니 희대의 팬더믹에서 최고 수혜자는 촬영장비 업체인 것 같다.
2주 전에 그 바다에 나도 동참했고 결론은 '망했다'이다. 냉정하게 무수히 많은 모래 속에 전략 없이 뛰어들었기 때문에 결과가 섭섭하지는 않다.
요즘에는 공중파 방송에서도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연예인을 능가하는 인지도는 수입으로 연결되었고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최고로 선망하는 직업이라고 하니 이제 이 가상공간은 완전경쟁시대에 접어든 모양이다. 그럼에도 시대에 동참하고 싶다는 떨리는 욕망이 시력 나쁜 코뿔소처럼 무작정 달려들게 만들었다. '코스트 제로'니까, '밑져야 본전'이니까 '무식하면 용감'하니까.
내 콘텐츠는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알려주는 교육용 채널이다. 당연히 한국인들이 봐줄 일은 없고 무수한 별들만큼 전 세계에 퍼져있는 한국어를 갈망하는 수많은 잠재고객들에게 어떻게 외면당했는지 영상을 2개나 만든 경험자로서 그 과정을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먹방, 여행, 경제, 심리학, 음악 등 수많은 콘텐츠가 일회용 종이컵처럼 마구 쏟아지는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인심 좋은 시청자가 '좋아요'를 누르거나 '구독' 버튼을 눌러줄 거라는 나이브한 기대만 했었지 썸네일이나 초반 10초간 시선을 잡아 둘 무기 같은 것은 애초에 없었던 것 같다.
1. 장비
캐논이 좋은지 소니가 좋은지 카메라를 논할 처지가 아니지만 부족한 부분을 고가 장비가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한동안 매달렸다. 그러다가 콘텐츠에 따라서 카메라가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조언을 들었는데 특히 교육용 영상은 스마트 폰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게다가 얼굴은 출현하지 않기 때문에 조명도 필요 없어서 저렴한 마이크와 1m 20cm 길이의 삼각대 하나를 구매했다. 확실히 꼼꼼하게 검색해서 돈은 굳었다.
2. 영상 자료는 오피스 파워포인트 프로그램을 사용하였고 녹음은 컴퓨터 본체에서 모니터를 촬영할 수 있는 앱을 다운 받았다. 결과물은 2G 핸드폰 같았다. 파란 하늘에서 파란색을 빼고 회색만 남은 흑백 TV 화면을 보는 느낌이었다. 첫 영상을 올리고 3일이 지났는데 통계를 보니 총 3명의 시청자가 평균 5초를 내 영상에 머물렀다고 나타났다. 소가 목욕하고 지나간 맹물 설렁탕 수준도 못 되는 결과물이었다.
3. 어느 친절한 유튜버 채널이 알려준 대로 편집 프로그램, 디자인 사이트, 무료 이미지 사이트, 칼라 추천 사이트 등을 '즐겨찾기'에 넣어두고 트렌디한 파워포인트 작성을 위해 샘플을 보며 연습했다.
이즈음에서 장비가 아니고 내용의 질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물론 몰랐던 것은 아니다, 다만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도 필요 없으니 삼각대는 베란다 한쪽으로 지워졌다.
4. 두 번째 촬영을 진행했다. 글씨가 드러나게 바탕색은 진한 색으로, 내용에 맞는 이미지를 가져다가 모서리를 세련되게(?) 처리하고 해당 페이지에 배치했다. 목소리 톤은 조금 더 올려서 졸린 시청자를 깨울 수 있도록 했고 가능하면 진행 속도가 늘어지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결과물은 할머니 몸빼 바지를 빌려있는 모양이랄까, 창피했다. 1, 2차 영상 다 해서 15명이 평균 11초를 시청했다는 통계 숫자에 기가 죽었다.
아직도 실망하기에는 이른 걸까?
5. 한국어 교육 영상이기 때문에 한국어로만 채웠는데 한국인이 한국말로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것이 외국인 학습자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국인이 아무도 없는 미국 학교에서 미국인이 영어로 영어를 가르치는 현장에 있다면 어떨지 역지사지해봐야 하는데 '너무 소중한 한국어'라서 한국어만 사용해야 된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6.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인트로가 필요하다. 놀이동산에서 인기 있는 놀이기구를 탈 생각에 잔뜩 들뜬 사람처럼 설레게 하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문법을 설명할 때는 효과음도 넣고 애니메이션을 사용해서 영상을 세련되고 깔끔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아직 시도해볼 것들이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7. 나 스스로 학습자가 돼서 다른 채널을 시청했더니 내가 만든 영상이 얼마나 부족한지 보여서 '나 이렇게 뻔뻔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를 가진 채널이 그만큼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도와 노력이 있었을까 생각만으로도 존경스러웠다. 그러면서도 한국어 교육 채널에 대한 한계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먹방이나 요리 채널은 한번 속도가 붙으면 쑥쑥 성장하는 반면 한국어는 3년 이상이 되어도 구독자가 5만 이상을 넘기기가 어려워 보였다. 속세에 필요한 것들은 포기하고 취미생활 혹은 자원봉사를 하는 자세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세계적으로 한국어 사용인구가 2020년 기준 세계 14위라고 하는데 그 많은 학습자들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지금은 세 번째 영상을 준비하고 있다. 앞의 두 개 영상보다 확실히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평가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니까 괜스레 기대를 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영상의 완성도를 높이고 채널이 안정될 때까지 끊임없이 수정하고 보안하는 일만 남았다. 시작은 했으니까 말이다.
지금까지 이런저런 말들을 시간을 들여 나열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영상의 "내용"이다. 교수자로서의 경험도 많이 부족하고, 수업 내용을 구성하는 방법도 잘 모르니 다른 내용은 모두 핑계에 불과할 뿐이다. 다만 '시작'했다는 것에 스스로를 칭찬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자.
<시작하다 그만두면 걸어간 만큼 이익>이 아닌가. 서두에 '망했다'라는 표현을 썼지만 정말 그렇다면 의기소침해 있을 텐데 역시 '코스트 제로'가 좋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