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옷을 벗으니 바람이 살랑

관계는 끊는 방법도 있다.

by 윈서



차라리 왜 그러냐고 따질만한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기 쉽다.


너는

내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슬쩍 못 들은 척하거나

차를 타면 언제나 뒤에 앉거나

단톡방에서도 흥미 없는 이야기가 아니면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어느 순간 화제를 돌려버리고

약속 시간에 조금 늦은 나를 비스듬히 서서 내려 보았지.

계산은 언제나 내 몫이었고

처음에는 미안해하다가 음식 값을 결제한 순간을 제외하고

짜증 내는 얼굴만 보이고 헤어질 시간을 재촉했지.


20년 지기 친구를 보냈다.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수없이 주저했으니 해야 할 일을 한 것처럼 덤덤했다.

마지막 순간에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차분하고 정확하게

그러나 상대가 살짝 흔들릴 만큼만 힌트를 주었다.

지금이 너와 나 마지막 순간이라고, 정신 차릴 필요 없다고!

"나를 너의 화수분으로 착각하게 만든 건 나니까 사과 따위는 필요 없어!"


나는

네가 필요한 만큼 시간을 내주고

얇은 네 지갑을 걱정해서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고

한 번이라도 더 웃는 모습을 보기 위해 좋아하는 말만 하고

찡그릴 때는 긴장하고

웃을 때는 마음을 쓸어내리고


친구니까, 친구는 뭐 든 지 다 들어줘야 하는 사람이니까.

내가 너 보다 많이 가졌으니까, 적어도 그렇게 보이니까.

그리고 나는 좋은 사람이고 싶으니까 그래 왔다.


그러다 병이 들었다.

만날 시간이 다가오면 심장이 뛰고

때로는 내가 더 크게 화를 내서 그 두려움을 극복해 보려 했다.

만나는 시간 내내 한 번도 웃지 않아도

뚜벅뚜벅 앞으로 혼자서만 걸어가도

길 눈이 어둡다고 눈치를 주어도

너는 꽤나 똑똑한 아이니까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생각했다.




용기가 없던 나는 혼자 이런 대화를 상상했다.


왜 그랬니?


너를 챙기지 않은 것이 아니라

네가 가장 편한 사람이고 이해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야.


사람들은 착각해, 아니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서 지저분한 변명을 하지.


너를 챙기지 않은 것이 아니라

네가 가장 편한 사람이고 이해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야.


좋아, 그럼 네가 지금 웃어주는 사람들을 더 편하게 생각하고

나는 덜 편한 사람으로 대해 줘.


...............


무례한 행동을 [더 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으로 치환하지 말라고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조금씩 스며든 상처는 완치가 어렵다.

흉터가 남고 관계가 삐걱 일 때마다 가장 밑에 깔려있는 첫 번째 기억을 소환하게 될 테니까.

누군가는 내가 소심하거나, 뒤끝이 있어서 그런다고 비난할지 모른다.


네가 그렇게 인내심이 있는 사람이었냐고 반문해도 좋다.

모든 의심을 다 받아들이겠다.

어쨌든 나는 칼을 들었고

이 끈을 날카롭게 자르겠다고 결심했고

앞으로 다시는 이런 관계를 만들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휴우 ...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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