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파에 길게 누워 꺼진 TV를 보니
배가 처져서 해체해 놓은 물텀벙 같다.
사진을 찍으면 콜라겐 부족으로 얼굴 여기저기가 푹 꺼지고
칙칙해 보여서 짜증이 난다.
그럴 때는
냉장고를 뒤져서 야채와 과일을 갈고 밀가루를 섞어 팩을 만든다.
'"잡티는 가고 과즙미 팡팡 나는 피부여 돌아오라."
한 5분? 세수를 하고 토너를 바르기까지 살짝 마음에 들었다가
픽 하고 혼자 삐져서 이불속으로 들어 가버린다.
생각해 보면, 얼굴과 배가 쪼글거려도
오늘 하루가 최고의 날이었으니
덧셈, 뺄셈 해서 평평한 날 아니었나?
물리적인 것과 주관적인 기분을 비교할 수 없겠지만
대상이 '나'이니 비논리적이라는 둥 참견은 거절한다.
나는 오늘 평평한 하루를 산 것으로 결론을 내리자.
#2
사람들 사이에서 외롭다.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내기 위해 의미 없는 말을 할 때나
그들이 좋아할 만한 주제로, 좋아할 만한 목소리 톤을 유지한 채
얘기를 하다 보면 지친다... 지친다.
연기의 신이 아니라서 가끔은 '나'가 드러나는데
그럴 때마다 싸해지는 분위기는 여전히 힘든다.
왜 그랬을까,
꼭 그래야만 했을까,
내 사회성은 왜 길들여지지 않을까.
실패한 하루 때문에 움츠려 든 마음을 추려서 집에 돌아오는 길은 힘이 없다.
내일도 출근해야 하는데..... 젠장!
깊은 지하에 짱 박아 둔 용기를 전부 끌어내서
돌파력 만렙을 만들자.
일단 창과 방패는 버려두고
돌파력 하나만으로 저 두꺼운 벽을 뚫어보자.
온몸이 찢어지고 피가 나서 금방 죽을 것 같은 상태로
성공하면 세상 사람들이 나도 one of them으로 생각하고
더 이상 쳐다보지 않겠지?
그런데 반전이 있다.
일단 돌파하는 데 성공하면
나의 개성은 특성이 된다.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의 모든 것을 받아주니까.
그러니 남들과 [다른 부류]라고 분리당한 사람들은 결정해야 된다.
one of them 위로 돌파하던지, 세상이 더 다양해지길 기다리던지,
스스로 자신을 받아들이던지.
자, 다 받아 줄 테다.
나에게는 창도 방패도 없다.
그러나 다 끝나고 나면
내 DNA는 살아남을 것이다.
내 유전자가 부러우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