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 면접장소에서 결혼 여부는 질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대답에 따라 당락이 결정될 수는 없다. 따라서 질문이 될 필요가 없다.
퇴직금이 바닥을 보이는 데는 10개월이 걸리지 않았다. 사람이 돈이 없으면 몸을 저절로 움직이는지 [최소한의 소비생활과 여가생활 만랩]이라는 소망은 순식간에 어린애 응석이 되었고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에 돌입해야만 했다.
퇴직할 때는 용기가 필요했었다. 한창 젊은 나이도 아니고 재 취업이 어려울 수 있었지만 이곳저곳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고 마음도 피폐해졌으니까. 그래도 그날의 용기는 지금도 자랑스럽다.
어느 날 취미생활을 위해 다니던 동네 여성문화센터에 경력이음센터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엘리베이터에 [당신의 경력을 이어드립니다.]라는 문구를 보고 호기심으로 방문한 상담실에는 연배 지긋하신 직업상담사 두 분이 계셨다. 방문 기념품으로 반창고 세트를 받아 들고 경력과 원하는 일자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담사 선생님은 큰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재 취업이 어렵지 않다고 하셨다. 여기서 큰 욕심이란 일반 기업 정직원, 8시간 근무, 복지 등을 말하는데 나는 처음부터 그런 것은 꿈도 꾸지 않았었다.
전체 취업률 저하, 청년 일자리 비상 둥 실업 관련 키워드가 매일 뉴스거리인데 나이 많은 내가 젊은 구직자들과 경쟁을 한다는 것은 너무 야무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미 '좋은 것은 그들 먼저'라고 사회에서의 내 포지션을 정리해 둔 상태였다. 소박한 생각을 하니 일자리는 많았다. 공공기관 기간제, 우체국 출산휴가 직원 대체 등 최저 시급이지만 월차와 4대 보험 그리고 길게는 1년까지 일할 수 있는 곳이 나왔다. 여러 정보를 제공해 주시는 상담사님은 내게 든든한 아군이 되었다.
채용공고가 났다는 연락을 받으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쓰고 각종 자격증과 건강보험 득실 확인서 등 서류를 만들어 해당 기관에 제출했다. 처음에는 사회 초년생처럼 자기소개서에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하겠습니다.] 등의 각오를 꼭꼭 눌러쓰는 것이 부끄럽고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통장 잔고가 줄어드는 불안감보다는 나았고 서류가 통과되고 면접을 보라는 문자가 오면 아직은 쓸모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자기 효능감도 느꼈다. 면접 날에 모처럼 차려입고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예상 질문을 궁리할 때는 심장이 살짝 쫄깃해지기도 했다.
처음 갔던 기관은 15명 뽑는데 100여 명 가까이 지원했다. 5명씩 면접장에 입장했고 면접관들도 5명이었다. 심층면접이라고 하기엔 민망하지만 그래도 쉽게 생각할 건 아니었다. 두 번째는 혼자 들어갔고 면접관이 3명이었다. 업무 능력 관련 질문, 성격, 문제 해결 능력 등을 묻는 질문에는 성실히 답했다. 그렇게 몇 개는 떨어지고 몇 개는 합격을 해서 그럭저럭 지냈다.
요즘에는 이력서에 사진을 붙이지 않는다. 잔뜩 뽀샵을 한 사진이 큰 의미가 없어서였을까 얼굴로 서류 통과 여부가 결정 나는 일이 없어서 좋았다. 더 좋았던 것은 개인 성향인 종교, 정치, 결혼 여부, 지나치게 구체적인 경력 등을 이력서에 기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오히려 이력서 작성 요령에 "개인적인 것들을 기록할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문구가 있어서 달라진 사회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문제는 면접을 볼 때였다.
면접 끝에 "자녀 분들은 지금 ~" 말을 다 끝맺지도 않고 면접관 중 한 분이 훅 하고 사적인 질문을 했다. 이력서 작성요령에 '주의사항' 이 있던 아주 사적인 "결혼"에 대해 묻는 질문이었지만 당연히 이해할 수는 있었다. 결혼 여부와 아이들 나이에 따라서 근무에 지장을 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내 나이쯤 되는 구직자에게나 이해를 받을 수 있는 질문이지 20-30대에게는 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게다가 질문자는 [당연히] 결혼했을 거라고 생각해서인지 자녀에 관한 질문으로 직진했다.
"자녀는 어떻게 되세요?"
"저는 미혼입니다."
나의 자연스러운 대답에 면접관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로 아주 당황스러웠던 것은 "혹시 어디 아픈 곳은 없으신 거죠?"였는데 이 질문은 여자 면접관으로부터 받았다. 무조건 반사처럼 나온 질문이라서 적합한지 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다른 기관에서 받았던 두 번째는 "죄송합니다."였다.
"아이는 몇 명이세요."
"저는 미혼입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라고 곧바로 사과했다. 미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왜 죄송할 일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질문한 사람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구나 정도로 생각했는데 옆에 있던 다른 면접관이 이어받아 말하길 "요즘에는 면접자 개인만 보이는 초본을 제출하다 보니 그런 내용은 모릅니다."였다.
나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듣고 있었다.
이런 반응은 새로운 장소나 관계에서 늘 있어 왔던 일이라 마음의 굳은살이 박혀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아무리 최선을 다해 면접을 봐도 문을 닫고 나오는 기분은 좋지 않다.
결과는 이 두 곳 모두에서 불합격이었다. 물론 내가 경쟁자들보다 우수하지 못해서 떨어졌을 수 도 있고 분명히 그랬다고 믿고 싶다. 그러나 나만 받은 질문을 계속 곱씹어 보게 되는 이유가 있는 것에는 좀 지친다.
언제쯤 내가 나인 것이 괜찮을까.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나인 것과 당신인 것이 모두 괜찮다는 아니 달라서 더 다양한 얘기를 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편하게 통성명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