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정의 고수가 되다
인도 생활 한 달이 다 되어가자 몇 가지 바뀐 게 있다. 일단 제스처. 인도에서 Yes의 표시는 '끄덕'이 아니라 '갸우뚱'이다. 보통 왼쪽으로 까딱 움직인다. 처음엔 뭘 물어봐도, 심지어 제값을 계산했는데도 갸우뚱거리는 인도인들을 보고 '참 부정적이구나' 생각했었지만, 이젠 나도 제법 고개를 놀리게 됐다.
아무래도 가장 큰 변화는 식단이다. 바라나시에서 닭에 한번 크게 데고 닭, 양, 소, 돼지 다 끊었다. 고기를 많이 안 먹는 나라에서 고기를 찾아 먹는 것 자체가 에러 아닌가 싶다. 아무튼 메뉴판을 받으면 베지터리안(vegetarian) 페이지에서 고른다.
걔 중에서도 두부처럼 생긴 치즈, 파니르(Paneer)가 아주 입에 잘 맞는다. 부족한 단백질을 어느 정도 보충해주면서 유럽 치즈처럼 구린내가 없다. 매운 녀석은 제법 매콤해서 밥과 스윽스윽 비벼먹으면 부족한 매콤 게이지가 어느 정도 채워진다. 근데 문제는 내가 채식을 하고 있다는 몹쓸 인지 때문에 더 먹는다는 안타까운 사실. 찌고 있다.
반면 흥정은 정말, 적응이 안된다기보다 여전히 피곤하다. 매 순간 모든 곳이 흥정으로 시작한다. 릭샤(오토바이 택시)를 타든 과일을 사러 시장에 가든 외국인 가격이 따로 있다. 보통 힘 빼기 싫어서 20-30% 더 얹어주는 편이지만 '너네 나라에서는 얼마 안 하지 않냐'며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면 화가 날 때가 있다.
관련해 말을 덧붙이자면 인도엔 부(富)의 신도 있다. 신의 수가 수 천만 개, 누구는 수 억 개라고 하는 힌두교에서 나름 인기(?) 신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숭배받는 부의 여신 '락슈미'를 위해 명절까지 쇠는 게 인도인들이다. 한 힌두 경전에는 이런 말도 적혀있단다. "가난이 죄다. 가난한 자는 죽은 자와 같다. 세상의 뿌리는 부에 있다."
무슨 맥락에서 힌두교에서 부를 떠받들게 됐는지 몰라도, 인도인들에게 물질은 정신만큼이나 중요한 듯하다. 호구 외국인들을 잘 구워삶아 몇 푼을 더 챙기는 게 우리에겐 사기로 보일지 몰라도 인도인들에게는 좋은 장사 술일 것이다. 뭐 덕분에 나는 흥정의 고수로 성장하는 중. 훗!
이 글은 2014년 12월에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