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호수 Dec 23. 2021

사람의 모호







 며칠 전부터 나는 저녁 늦은 시간에 혼자 호수 공원을 걷기 시작했다. 환한 대낮에는 걷고 싶지 않았다. 너무 많은 것들이 보였고, 너무 많은 것들이 나를 봤다. 번화가 한 가운데 자리 잡은 호수라서 그런지 밤이 되면 근처로 네온사인이나 불빛들이 많이 보였다. 나는 그것들을 보며 걸을 때마다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은, 그리고 다시는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는 자꾸만 내가 원래 있던 곳에서 멀어지려 했다.


 사람은 누구나 머무는 곳에 대한 어떤 불안을 느낀다고 생각한다.그곳이 집이든, 학교든, 직장이든 그 곳에 영원히 머무르는 사람도 없고, 머무를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불안과 불확실감. 사람만이 주거의 불안을 느끼며 살아간다. 물론 동물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안다. 천적을 피해 끊임없이 자리를 옮겨야 하고, 계절의 변화 따라 이동하는 것처럼. 그러나 사람은 그러한 이유로 불안을 느끼기에는 너무 복잡하게 만들어졌다. 나는 차라리 천적을 피하기 위해, 계절에 따라 주거의 공간을 옮기는 동물이 되고 싶다. 사람에게 머무르는 곳이 영원하지 않은 이유는 더이상 그곳에서 나라는 이름으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름을 잃어갈 때쯤 사람은 그곳을 떠난다.


 내가 장소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호수 공원에 있는 보트 관리소 때문이었다. 그래도 여름에는 늦은 저녁에 가족이나 연인과 보트를 타는 사람들이 몇 보였는데 겨울이 되다보니 추운 날씨 탓에 아무도 보트를 찾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커다랗고 동그란 보트들은 보트 관리소 근처에 빼곡히 정박해 있었다. 이 날씨에 보트를 타면 어떤 기분일까 같은 쓸모 없는 생각을 하던 내가 걸음을 멈춘 이유는 문 닫힌, 불꺼진 보트 관리소 문 앞에 꽂혀진 우편물들 때문이었다.


 나는 한 번도 보트 관리소가 어떤 주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어쩌면 저 작은 간이 오두막 같은 곳에 사람이 머물 수 있다는 생각 조차. 나는 걷다 말고 한참동안 그 앞에 서 있었다. 순간 내가 발을 딛고 있는 곳이 너무 멀게 느껴졌다. 편지를 받을 수 있는 곳이라면 거기가 어디든 장소가 될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세상에 너무 많은 장소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불 꺼진 보트 관리소 문 앞에 빽빽하게 꽂힌, 아무도 확인하지 않은 우편물을 바라보면서 나는 내가 가까운 사람들에게 손편지를 쓰는 것을 좋아한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떠올렸다. 보트 관리소 앞에 놓인 편지들은 그곳이 변할 때까지 머무를 것이고, 영원히 그 주소를 가진 채 다음 편지를 기다릴지도 몰랐다. 어쩌면 내가 손편지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와 비슷했다. 그 사람이 내 편지를 받는 동안에는 그곳을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 같았으므로. 어쩌면 영원히 내 곁에 머물러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착각 때문에.


 그러나 나는 종종 그런 사실들 때문에 아팠다. 머무름에 대한 영원을 속절없이 믿었던 탓이었다. 아마 몇 년이 지나고 나면 그 보트 관리소는 문을 닫을지도 모르고, 나 역시 그 사람을 찾지 않을지 모르고 그러면 그것들을 향하는 주소의 행방은 영원히 찾을 수 없게 될지도 몰랐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어릴 때부터 우는 것을 참는 게 습관이 된 나는 우스갯소리처럼 내년에는 잘 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더 잘 울기 위해 살겠다고. 내가 머무르고 있는 공간 안에서 어떻게든 잘 울겠다고.


 며칠이 지나 호수 공원을 다시 걸었을 때 보트 관리소에 처음으로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봤다. 그날은 날이 꽤 추웠는데도 한 대의 보트가 호수 위에 둥둥 떠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여전히 타인들이 그곳에 잠시동안 머무르고 미련 없이 떠나는 풍경을 멀찍이 지켜봤다.


 호수 공원을 몇 바퀴 걷다 나오면 나는 번화가를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간다. 거리에 나무마다 연말인 것을 티라도 내는 것처럼 전구가 둘러져 있는 걸 본다. 멀리서 보면 불빛만 동동 뜨는 것처럼 예뻐 보이는데 가까이서 보면 그렇지도 않다. 전깃줄 같은 것을 나무에 칭칭 매감고, 옆에 서 있는 가로등에게서 불빛을 훔쳐 오는지 링거줄 같은 것이 둘 사이에 연결 되어 있다. 서로가 아니면 빛을 만들어 내기 어려워 보이는 것처럼.


 일년 동안 숨겨 두었던 불빛들이 쏟아지는 연말에는 나무에도 주소가 있는 것 같다. 모두가 잠시 찾았다가, 시간이 지나면 돌아가는. 패딩 주머니에 작은 물병을 쑤셔 넣고, 모자를 푹 눌러쓴 내가 존재의 수많은 장소를 지나치면서 여전히 살아 있었다. 하여 나는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언제나 잘 두고 올 수 있는 사람. 잘 버리고, 잘 떠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했다. 장소 안이 아니라 장소의 바깥에서 잘 지내는 사람으로, 그렇게.


 



 


 


 




작가의 이전글 개와 늑대와 귤의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