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살아 가는 것
좌절감이 밀려왔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아픔 탓인지, 최근 들은 말 때문인지. 머릿속엔 절망만이 가득 찼다. 이렇게 살아도 될까라는 의문이 떠오른 날, 나는 좌절했다.
한숨이 나왔고, 어두운 표정을 어찌 숨길 지 몰라 마스크를 썼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에도 아픈 체하며 고개를 숙인 것도 빛 잃은 내 눈을 들키기 싫어서였지. 꿈에서도 그랬다. 누군가는 나를 괴롭혔고, 지속적인 고통에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요즘 들어 깊은 잠을 잔 탓인지 둔감해졌다. 알람소리조차 듣지 못해 머리를 감지 못 한 날. 약속을 잡자는 말에도, 찾아온다는 말에도 자꾸만 다음을 외치는 나였다. 나를 사랑하기로 한 것이 어제 같은데 요즘 들어 잔뜩 불은 몸 탓인지, 갖은 실패 탓인지 내가 미워진 요즘. 친구들끼리 장난 반, 진심 반으로 하는 말엔 늘 연애와 결혼이 섞이고, 이러다 늙어 죽을 거란 말에 아프기 전에 죽고 싶단 의사를 표하길 반복.
내 연애 조건에 무조건 담겨야 하는 장점 세 가지와 절대 싫은 점 세 가지에 나는 어떤 답을 했지? 말할 때마다 나의 조건은 달랐던 것 같은데 가장 중점이 뭐란 말인지. 저번에는 자기 제어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더니 이번엔 대화의 중요성을 말하고, 후엔 넓은 어깨 같은 몸매, 돈, 자기 관리, 가정환경, 궁합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뱉었다. 결국 내가 말한 건 뭐였는지 기억 못 하는 건 내 감정 상태 아닐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이상형 조건에 연신 고개를 굴리다 못해 글로 쓰기에 나섰다. 믿음이었나, 신뢰였나, 촉감이었을까. 그래 내가 절대 싫은 점을 적는 게 좋겠어. 나는 편협한 사람이 싫다. 말하면서 편견에 찌든 사람을 만나는 건 고통뿐이다. 나의 친구들도 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쓸 시간이 아깝다.
맞아, 행실도 있었지. 나는 부정적인 사람도 싫지만 행실이 못 된 사람을 만나는 게 싫었다. 어딘가 거들먹거리는 것도, 누군가를 막 대하는 듯한 행동도, 자연스레 머리 위에 손을 올리는 것도 전부.
멍청한 사람? 난 배움이 없는 멍청한 사람이 싫다. 바보처럼 웃으며 나에게 오는 것이 사랑이라면 평생 사랑은 안 하고 싶을 정도로 멍청한 게 싫었다. 현실에 빠져 원망만 하는 사람과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숨이 턱 막혀온다.
그래서일까. 나이가 들면 머리가 커진다는데 키는 그대로 머리만 가득 찬 나는 조건만 많아졌다 원하는 것은 많고 나의 알맹이는 없는 것이 빈 속에 먹는 바나나구나.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데, 내 죄를 모두 용서해 준다는 말에도 그래? 그럼 나 더 막살아도 되는 거야?라는 되물음을 뱉는 통에 무엇을 할는지.
요즘 들어 진정한 사랑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핸드폰만 들여보아도 사랑하고 죽고 못 살 것 같은 모습의 한 쌍이 보이는 통에 내 사람은 어디 간 건지. 내가 진심으로 보고 싶은 사람이 누구일지. 모든 것이 지루했다. 뭐 해?라는 연락에도, 보고 싶단 말에도, 마음에 든다는 관심 표현도 전부 지겨울 만큼 흥미를 잃었다. 나는 연애를 ‘안’ 하는 게 맞을까. 소개도, 자연스러운 만남도 없고, 목적 없는 관계도 싫다면 누구를 만날 수 있을는지. 이건 연애를 ‘못’ 하는 걸 테다. 누군가에게 쓰는 시간도 귀찮은데 감정을 쓰고, 체력과 시간을 바칠 이가 나타날는지. 사람이 다 그런 거니까 사랑을 해야 한다는 말에, 답장 안 한 카톡을 기다리는 것도 전부 미웠다.
다시 서론으로 돌아갈까? 자연스럽게 건넨 '사랑은 정신병'이란 책처럼 자연스럽게 사라진 인연들이 많았다. 누군가에겐 7번의 여름일 시간, 저는 스쳐 지나간 300명의 이름만 남기었으니, 이놈의 금사빠. 인사만 해도 인연은 아닐지 미래를 상상하곤 했다. 가벼운 감정을 품으면서 진실한 감정을 원한다니.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면 자격요건에서 탈락일 거다.
그래서 오만 방자해진 나는 원망할 사람이 없어 나를 미워하기로 했다.
참된 자유를 주시고 우리를 구원한 주님이라더니, 설교 시간마다 위로를 준다. 그래서일까, 좌절감에도 살아가는 것은 불안하다 말하면서도 견디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