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2024

by 벼리울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까. 글을 안 쓴 지 꽤 된 것 같아.

사실 나는 10월의 운명을 생각하며, 조금은 마음을 덜어냈었어. 어떤 이유에서든, 이게 맞는 걸까?라는 고민이 들더라.


그런데 말이지, 왜일까. 목이 마르다는 작은 말에 물을 컵에 따라주고, 덥다는 내 한 마디에 목이 아파도 에어컨을 켜주는 널 보니 미워할 수 없더라고.


그 이면엔 네가 하는 모든 말이 전부 사실인 걸 알고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해.


높아진 너의 언성, 나를 혼내는 듯한 말투. 그게 우리의 이별일까 싶어 오랜만에 글을 써볼까 했는데 말이지, 결국엔 난 그런 너도 좋다는 말을 하고 있더라.


나는 아침을 안 먹는데, 아침을 차리면서 점심 걱정도 하고 있잖아. 소시지와 계란을 주며 남은 소시지 한 점을 내 접시에 올려주는데, 마음이 고마워서라도 밥 한 공기를 다 비워야겠다 생각한 거야. 아침을 차리면서 저녁 걱정을 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겠다는데, 그 말이 웃긴 거 있지?


오늘 나는 안절부절못하며 퇴사라는 말을 꺼냈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 싫어 “그러게요,, 참,,”이라며 말끝을 흐렸어. 사실은 정말 크고도 큰 일이라 느꼈는데, 말하고 나니 너무도 별 일 아닌 현실에 웃음이 나오더라.


유난히 해가 뜨겁던 월요일, 오랜만이라 그런지 더욱 버겁던 출근길이었는데 말이야. 여전히 바닥에 붙어 있는 순이와 산이를 보니 웃음이나온 거 있지? 눈을 꿈뻑이다 벌떡 일어난 순이와, 나를 보고 고개를 들더니 달려온 산이라니 제일 그리워하던 모습을 바라본 거야. 더위에도 해맑게 웃는 네가 좋아, 더운 날씨도 사랑하게 되었어.


유난히 해가 길다 느껴진 날, 그동안 쌓여온 피로가 녹아내렸나 긴 잠을 잔 것 같아. 자그마치 9일, 9일만이 나에게 남은 자유인 듯, 온몸으로 여름을 누린 탓일까. 10시간이 눈을 뜨고 일어나니 사라진 거지.


사실 조금은 걱정한 것 같아, 이대로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멈춰있으면 어떡하지라는 고민도 했고 말이야. 똘망한 눈이라 표현하는 그녀는 내가 기대된다는 거야. 그래서 다시 노트북을 켜고 메모장에 글을 적었어. 어떤 말을 적고 싶은지 몰랐는데, 지금 이 순간 적고 싶은 건 내 감정에 대한 기록일 거야.


사실 나는 9일 동안의 시간도 온전히 쉰 적 없어. 이래도 되는 걸까, 아무것도 안 해도 될까 고민했거든. 이번만큼은 2일 동안 아무것도 하지 말아 보자며 휴식을 취하는데, 그 순간에도 조금은 남은 일이 떠오른 것 같아.


내가 퇴사를 하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묻는 사람이 많았는데, 사실 나 아무것도 모르겠어. 일단은 그냥 여행.일단은 떠나고 싶다 생각했거든? 근데 나 조금은 일하고 싶고, 조금은 글 쓰고 싶고, 조금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 것 같아. 생각해 보면 소중함은 멀리 있을 때 더 느낄 수 있는 거니까, 조금씩 가까워지고 싶더라. 전부 내려놓을 수는 없으니까.


사랑한다며 술기운에 눈물을 흘린 너는 어떤 생각이었을까. 넌 무릎에 피가 나도 내가 우선이었는데 말이지,식음을 전폐한다는 말을 그날 처음 알았거든.


무슨 생각을 하냐는 말에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그냥 ,, 그냥,, 이라는 말로 전부 설명되더라.


2022년 그해 여름은 너무도 뜨거웠고, 2023년 그해 여름은 너무도 밝았고, 2024년 올해의 여름은 조금 쌉싸래한 맛이 나.


‘9일의 여름’이란 제목의 영화가 있다면 나는 주인공일까? 혼자 웃음 짓고 혼자 슬퍼한 거 있지? 제 팔자는 지가 꼰다 말하는데, 내 팔자를 내가 꼬는 것 같아 조금은 두려웠어. 그럼에도 이대로, 난 큰 일을 작게 만들어주는 네가 좋아서 이렇게 글을 적어.


퇴사를 고민한 6월에도 그렇고, 7월에도 넌 날 멋진 사람이라 말해주니 더 멋진 10월을 만들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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