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겠습니다.

by 벼리울

“여행을 떠나려고요. 퇴사하겠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 그리고 대학 졸업도 전에 취업. 여행, 여행을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여행조차 일처럼 느껴진 시점에 나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떠난다고 말하긴 했는데, 어디로 가야 하지? 태국은 코로나 때문에 아직 어렵고, 제주도나 가볼까? 제주도는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로 일하면 좋다던데.’ 차가운 물을 라면에 부어버리듯, 다니던 운동을 정리하고 짐을 챙겨 제주행 티켓을 끊은 나. 낯선 이가 나를 2층으로 안내해 준 그 순간부터, 나의 파랗고도 푸른 제주살이가 시작되었다. 물을 두려워하던 나는 이때부터 살을 곱게 태운 제주산 물개가 되었는데, 그제야 왜 사람들이 제주를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제주는 정말 아름답다. 날씨가 더우면 자연스레 바다로 향하던 사람들 덕분에 알게 된 사실이다. 바다 위에 누워 보는 하늘의 맑음도, 물속에서 보는 윤슬의 아름다움도 이곳에서 처음 경험했다. 덕분에 나는 8월의 퍼스널 제주 컬러를 가진 여자, 주근깨가 많은 여자가 되었다.


그리고 9월, 다시 태국으로 돌아온 나. 빨간 점으로 가득 차 있던 나의 인스타그램 스토리가 공백이 된 순간, 나는 아주 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호텔 방, 혼자 기다리는 공항 라운지에서부터 시작된 휴식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껴진다. 노트북을 꺼내 영화를 보고, 피자가 먹고 싶을 땐 피자를 주문하고, 자고 싶을 땐 잠을 자는 삶. Google 지도를 살펴보다 가고 싶은 곳에 가는 것까지, 모든 것이 소소한 행복으로 다가왔다. 나, 생각보다 각박하게 살아왔구나. 내일 묵을 숙소를 전날 정하고, 가고 싶은 곳의 비행기 티켓을 끊기를 내일로 미뤄본 것도 처음이었다. 6년 전부터 궁금해하던 풀 문 파티에 참석하고, 낯선 여행자들과 핑퐁을 하며 즐긴 시간도 휴식 덕분에 생긴 일이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이전과는 다른 감정. 나는 단순한 휴식이 중요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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