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인연들에게

by 벼리울

시간이 지나도 종종 뇌리에 스치는 작은 인연이 있다. 예를 들면, 특이하게 ‘연’이라는 성씨를 가진 아이. 너는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술집에서 자연스럽게 내 어깨에 손을 올렸는데, 하얀 치아로 씨익 웃는 네 모습이 뇌리에 박혀 차마 너를 밀어낼 수 없었다.


너는 온몸에 담배 냄새가 비릿하게 남은 아이였는데, 담배를 싫어하는 나는 비릿하면서도 짙은 네 체취가 좋아 너를 옆에 두고 싶었다. 너와 입을 맞추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하며 너의 눈을 뚜렷하게 본 나. 너는 중국에서 살다 수원에서 대학교를 다닌다고 소개했는데, 그래서인지 한자만 보면 네 생각이 나 번역을 핑계로 사진을 보내곤 했다.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고, 검은 피부에 밝은 치아를 가진 너. 우리는 곧바로 연애를 시작한 것 같은데, 실제로 만난 기억조차 희미하다.


흐릿한 기억을 일기장에서 찾으려 했다. 당연하게 없는 너의 이야기,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온 것은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오래전에 수기로 쓴 일기장들을 버린 것도 그만큼 시간이 흘렀다는 증거였다. 버려진 일기장처럼 서서히 잊혀 가며, 선명했던 치아와 비릿한 담배 내음만 남은 네가 궁금해졌다. 23살을 가득 채웠던 너는 어떤 모습일까? 내 기록은 다소 병적이고 변태 같은 면을 품고 있지만, 그때의 감정을 담으려는 듯, 그들의 말투와 향기, 은밀한 요소들로 가득 차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비밀 창고가 되었다.


내가 다시 널 만난다면, 너를 어떤 모습으로 담아야 할까? 내 기억 속 너는 어떤 모습으로 남고 싶어 할까? 흐릿해진 네가 문득 그리워졌다. 암호로 걸어둔 메모장에 가득 남은 이들의 체취보다 더욱 궁금한 것은 비릿한 너의 담배 내음이다.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처럼, 너의 체취가 내 마음속에 어떻게 남을지 궁금해 다시 담고 싶은 하루. 안 되겠다 널 지워야겠어.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지켜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