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딱 일 년만 기다려주세요.” 내가 부모님께 말씀드린 시간이었다.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여행을 떠나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일 년만, 딱 일 년의 시간만 달라며 부탁하며 제주도로 향한 나. 그렇게 나는 제주에서의 삶을 즐긴 뒤 서울, 태국, 대만, 또다시 태국과 말레이시아를 거쳐 평택으로 돌아왔다. 우리 집은 모태 신앙을 가진 집안이라 주일성수를 꼭 지켜야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떠나보낸 부모님의 마음이 문득 궁금해졌다. 예전부터 나는 부모님의 기대를 한 번씩 벗어나곤 했는데, 예를 들면 초등학생 때 개구리를 잡겠다며 논밭에 들어가 옷을 진창 더럽힌 일, 19살 종업식 날 처음으로 한 외박, 그리고 태국에 가고 싶다고 비행기 티켓을 끊기까지 예측 못할 일을 벌이곤 했다. 그때마다 부모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태국에 머무는 동안, 내 애인은 나의 부재를 핑계로 나를 떠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을 지켜준 건 나의 가족이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조금 위태로운 상태였는데 잦은 술약속으로 인해 살도 찌고, 몸 상태도 악화된 채 여러 죄악을 탐하곤 하였다. 잦은 외박과 탈선, 그 모습을 보며 부모님은 어떤 마음이었까 궁금해졌다. 얼굴 보기가 쉽지 않다며 밥을 차려주신 부모님 앞에서 고개를 숙인 날에도 어떠한 말도 하지 않은 나이기에 더욱 그랬을지도.
기다림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점 세 개가 움직이며 답이 오길 기다리는 1분, 너를 보기까지 남은 2일 정도의 짧은 시간이 떠오른 건 부모님의 기다림 덕 아닐까. 시간을 떠올리다 부모님이 떠오른 것은 전부 그 탓이었다. 30이 다가오는데도 어린아이처럼 철없을 수 있던 건 배에 나를 품고, 성인이 되기까지 키워준 노고, 30이 되어가는 딸내미를 온몸으로 품은 부모님 덕. 그 덕에 제대로 보답한 적도 없는 나였다.
“엄마, 아빠는 날 기다리며 어떤 생각을 했어?”
물어볼 수도 없는 나, 덕분에 나 잘 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