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던히 지독한 하루였다.
퇴사를 말하고 첫날 코로나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고 생각보다 아픈 통증에 식은땀을 흘리며 일어났다.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고통인지라 자각하지 못한 것도 사실. 온몸에 나타난 증상에 에이 설마~라는 마음으로 코로나 진단 키트를 꺼냈다. 너무도 선명한 두 줄. 말도 안 되는 상황에 헛웃음이 나왔다. “나 코로나 팬데믹 때도 멀쩡했던 사람이야!! 근데 이제 와서 코로나에 걸려? “ 내 몸에 괘씸함이 느껴질 줄이야. 퇴사하기로 하고 쉬는 첫날 아파버린 상황이 어이없긴 타인도 마찬가지. 요즘에는 코로나가 유행이라며 나도 이제야 mz가 되었다는 농담을 던진다.
오늘따라 친구의 우울증이 터져 관계를 끊겠다는 연락이 왔고, 무응답으로 답을 했다. 평소 답 없던 이는 반갑다며 연락을 하고 모르는 이름이 생일자 안내 목록에 이름을 비춘다. 어쩐지 전날 꿈에서 피를 보았다 했지. 몸 상태가 안 좋았고 침대에 눕자마자 잠든 것이 이상하다 싶었다. 급히 일정을 취소하고 꼭 해야 할 일만 마친 날. 이대로 끝내기 아쉬워 노트북을 챙겼건만 일할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는다. 나에게 드는 생각은 오직 위스키 한 잔. 위스키 한 잔만이 격렬하게 생각났다. 오늘따라 친절하고도 무례한 사장님들을 만났고, 조금 지쳤다. 내 얼굴이 공공재라도 된단 말인가. 식은땀이 훅 나더니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 문을 열고 나온 시점. 아직 직장에 있을 시간이다. 졸리다며 시계 초침만 바라볼 시간 지나가는 차를 보며 멍 때리는 나와 대비되는 상황에 정신을 부여잡았다. ‘아직도 아파? 간혹 가면 넌 너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인다니까?’ 걱정인 듯 채찍을 던치는 친구의 카톡에 ‘나 위스키 마실 거야. 마시러 갈래’ 의지 결연한 카톡을 보냈다.
이미 내 몸은 집 갈 생각이 없고, 오랜만에 떠오른 위스키바에 꼭 가야 한다는 마음만이 간절하다. 이러면 안 되는 거 알지만 이 순간 가장 간절한 마음인 걸 어떡하는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빨간 공간의 문을 연 순간부터 이미 글러버린 휴식. 매일같이 들리던 술집은 사라졌고, 할인한다던 꼬치집도 사라졌다. 위안을 얻을 셈으로 방문한 독립서점도 잠시 외출 중이라는 쪽지를 붙인 채 문을 닫은 시점.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데? 분노조차 나지 않았다. 그래, 그럴 수 있지. 말이라도 해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는 사실도 안다.
그리고 다시 여기. 위스키 한 잔이 당겨 도착한 공간도 오늘따라 낯설다. 코퍼독이 지독하게 끌렸지만 내가 찾는 술은 같은 초성조차 보이지 않는다. 결국 또 헤네시. 손바닥에 모든 열을 잔으로 옮겼다. 지금 내 손의 온도는 ‘40도보다 높을 것 같은데, 그럼 넌 전보다 더 농후해질 거야?’ 나의 바람과 달리 더욱 진한 알코올향이 코를 찔렀다. 식욕을 잃는다더니 내 식욕은 누구보다 왕성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 갈 걸 그랬어. 몰랐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지.’ 기대라도 안 했으면 실망도 안 했을 테다. 하루종일 밀린 숙제라도 하는 것처럼 ‘성장’이라는 단어에 든 생각만 끄적인 나는 ‘신념’이란 단어에 대한 생각을 끄집어야 했지만 그럴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포스팅을 재촉하는 문자에 답을 하고, 무례한 부탁에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대답을 하다니 지독하고도 무던한 날이다.
글에 대한 흥미도 잃은 지금. 오늘 하루는 무던히 지독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