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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선을 쳐야 하는걸까

by 벼리울

“이상하다. 너 촉이 좋다는 생각 안 해봤어?”


사주를 보러 갔을 때 들은 이야기였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사실 타인보다 촉이 좋다는 생각은 종종 했다. 예를 들어, 타인의 생일이나 성향을 짚었을 때 대부분 맞아떨어졌고, 싸한 느낌이 들면 묘하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났다.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 일은 늘 좋지 않은 방향으로 향했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내 촉을 믿게 되었다.


이러한 직관은 사람의 외모나 행동에서도 드러나곤 했다. 사람의 걸음걸이나 제스처만으로 그 사람의 성향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고, 과하게 친절하거나 말이 많은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게 되었다. 특히 눈이나 입꼬리 같은 세부적인 얼굴 요소에서 민감하게 반응했다. 예를 들어, 느끼한 눈빛을 품은 이는 부정적인 느낌을 주었고, 입꼬리가 쳐지거나 미간에 주름이 있는 사람은 우울하거나 분노하곤 했다. 물론 내가 이런 판단을 내릴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그런 인상이 강했으니 이해해 주길 바란다. 내 친구 원이는 사람을 많이 만나며 체득한 동물적인 감각이라 말했지만, 과연 그게 전부일까?


나는 사람을 만날 때 자연스럽게 내 마음이 편한지, 불편한지를 먼저 확인한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멘토와 멘티 형태로 만난 친구가 “넌 나를 친구로 생각하긴 하냐?”며 묻더니, 동등하지 않은 감정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때 직감했다. 이 관계는 더 이상 이어가지 않아야겠다고. 그동안 너무도 오래 외면해 온 사실이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옳다고 할 수 있을까? 가끔은 감정을 쏟고 싶지 않아서, 상처받기 싫어서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신념이 정말 옳은 것인지, 아니면 이제는 바꿔야 할 때가 온 것인지 고민한 날.


“접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신념이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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