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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울 Mar 28. 2024

이인조


다시는 내가 사랑하는 공간에서 좋아하는 걸

마주할 일이 없어져버리곤 했던 거야.


이 책은 너를 닮았다.

어두컴컴한 바에 앉아 치즈를 손질하는 시절의 너.


곱슬기 묻은 머리를 넘기며

환하게 웃는 너를 좋아해 버린 나였다.


어딘가 외로움을 담은 눈빛,

사유할 때마다 움직이는 네 목젖을 사랑했지.


‘여기 - 앉으면 될까요..?’


너와의 시작은 나의 무모함이었고,

나의 도전이었다.


‘뭐라도, 챙겨드릴까요?’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만남.


평소라면 없을 무모함이었다.

낯선 공기가 너무도 어색해 책장을 넘긴 나.

그때 읽은 책이 2인조.

자기 연민에 빠져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한 이가

너무도 한심하고, 너무도 마음에 들어 와인을 흘렸다.


꽃이 핀 길이 아름다워 열심히 거닐었고,

처음 가는 카페의 문을 두들기니 또 한 달.

한 달이 흘러 가을.


부드러운 흑표범이 사람이라면 너일까,

너는 이런저런 책을 레코드판 위에 올려두었지.


너를 보러 갈 때마다 가장 상단에 있는 책을 꺼내

한 장, 두 장 읽는 게 나의 낙이었다.


흐트러진 책의 모양새가 좋아 그대로 뒤집어 둔 날.

눈을 감고 음악을 듣는 너를 보며

나를 원망한 것 같다.


네가 소유한 책처럼 흐트러지던 나.

그렇게 우리의 관계를 이해하려 노력했지.


되지도 않는 분리수거를 하고,

네 모자를 탐하던 날.

그리고 네가 다른 이를 만난 날.


강아지를 키운다 했나.

초록빛의 사진이 너무도 미워 몇 번을 지켜본 것 같아.


그래서 그럴까.

이석원이라는 이름만 보면 네가 떠올랐다.


언제 들어도 좋은 말,

네 목소리라면 전부 좋던 날.


관계가 끊어진 탓에 너의 번호를 지우고 말았다.

그래서 그럴까


와인색의 벽지와 초록빛의 가구가 그립고,

어둡게 빛나던 네 피부가 그리워,


그렇게 책을 덮었다.


언제 들어도 좋을 순 없지.

그래서 더 사랑한 것 같아.


늘 외로워하던 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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