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 번을 떠났다.
2022년 5월 퇴사를 끝으로, 자유를 찾겠다며 떠난 여행길.
제주살이를 시작으로 태국, 태만, 말레이시아까지 다양한 곳에 머물었던 1년은 나에게 늘 여행이었는데, 한국으로 돌아가야 함을 느낀 순간 많이도 불안하고 떨었던 것 같다.
1. 제주.
제주에서 머물었던 4개월은 다양한 인간군상을 직면한 시기였다.
그 당시엔 너무도 크게 느껴졌던 일도 멀리서 지켜보니 그저 스쳐가는 일이었음을 깨달은 건 제주를 떠난 후 였지만 말이다.
제주란 곳은 나에게 너무도 많은 기회와 도전의 시간을 주었고,
싫은걸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됨을 알게 된 건 이때부터였나.
쓸데 없는 말을 줄일 수 있게 된 것은 제주가 나에게 준 훈계 덕이었을테다.
물을 두려워하던 내가 물에 들어가고, 다이빙을 시작한 것.
모든 종류의 술을 다 마셔본 것.
새로운 사람들과 소중한 시간을 함께 한 것.
잘 몰랐던 사람의 속마음을 알게 되고 내 사람으로 인정하게 된 것은 제주가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
여행을 하면 꼭 단골 카페, 혹은 밥집이나 술집을 만들고 싶었는데, 갈 때마다 날 반겨주고,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음을 알게 된 것도 전부 제주에서의 일이었다. (사장님과의 썸이나 썸이나 썸 같은 건 없었지만,, 우리 탑동치킨앤호프 엄마아빠나 해장국집 이모는 잊을 수 없지^^)
기록하는 건 좋아했지만 공개적으로 하나씩 하나씩 적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새삼 나는 기록에 진심인 사람이었다^^
마지막 날까지 바쁜 와중에도 연락을 해주고 나를 만나러 와준 사람들 덕에 행복했고, 여러 번 감사함에 눈물을 흘린 것 같다.
한국을 떠나고,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도 반겨주고, 응원해준 사람들 덕에 지금의 내가 있으니 말이야.
2. 태국.
태국으로 가는 비행기 값이 내렸다는 이야기가 들리자마자 짐을 챙겨 태국으로 떠났다.
부모님은 한국에 왔으면 평택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거라 생각하셨는지 하루 들려 바로 떠난 딸내미에게 어디냐는 물음을 보내셨지만, 나는 비행기였다.
비행기안에서 이전에 쓴 일기장을 훑었을 때, ‘놀랍게도 별 일 없었다.’는 그 말이 왜이리도 와닿았는지.
불빛은 어디에도 있었고, 누군가에겐 회피이자 유배지인 곳은 희망이자, 사랑, 정착지였다.
언제든 젖은 마음으로 그들을 안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혼자의 매력이라더니 조금은 우울했나.
멍하니 후아힌 바다를 보다 울어보기도 하고, 수영을 하다 만난 외국인 부부와 대화를 하면서도 울적해 한 것 같다.
3. 서울
한국에 돌아와선, 일을 시작했다. 평택에는 내려가기 싫고, 돈은 없으니 일은 해야겠고
사실 생일파티를 위해 돌아온거였는데 서울에 살 줄은 아무도 몰랐을거다.
차차네 집에 머물며 여러 일이 있었지만, 덕분에 인간에 대해 제대로 파악한 것 같다.
그때의 나는 너무도 작고, 불안하고, 위태로운 상태였는데 차차덕에 겨울을 날 수 있었다고 하면 오만이려나. 차차는 나에게 애증인지라 평생이 가도 잊을 수 없을 듯 하다. (이때 차차가 손절할까 고민했다는데 나였으면 손절했을거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고시원 살이를 해보고, 새벽까지 일을 하고, 살기 위해 운동하기까지 정말 많은 일이 있던 한달 반.
나의 크리스마스와 신년은 늘 교회와 함께 하는 시간이었는데 알바를 하며 카운트다운을 할 줄은 28살 내 인생에 가장 큰 변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4. 대만, 태국, 말레이시아.
다시 여행을 떠났다. 늘 혼자 떠나던 한국을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건 신기한 일.
덕분에 혼자일 때는 모르던 경험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무엇을 해도 든든하다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나는 늘 무언가를 해야 하는 사람이었는데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알찰 수 있다는 걸 이번에 배운 것 같다. 차이나타운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카페를 가고, 비를 맞으며 느낀 건 혼자가 편하다는 사실이었지만, 그럼에도 친구들 덕에 예쁜 사진과 영상도 건지고, 새롭게 눈을 뜰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기차를 타고 태국에서 말레이시아에 갈 줄은 정말 몰랐으니 말이다.
마지막까지 배려해준 너네 덕에 잘 지낼 수 있었어. 바나나차용 형제의 시간은 너무도 짧고도 길어서 타국에 그들을 두고 오는 길이 너무도 어색했다.
5. 제주.
한국에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제주로 돌아가는 일. 길었던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그리웠던 이들과 대화를 하며 제주에 남겨둔 이들의 고민을 품게 되었다.
우린 너무도 가까웠고, 그랬기에 서로를 미워했던 것 같다. 여행을 하며 느낀 감정을 풀고, 그들의 일상을 듣고, 여행내내 품었던 선물을 나눠주며 ‘愛’의 감정을 다시끔 떠올린 것 같다.
좋아하던, 하지만 잊고 있던 곳을 들리고 시간을 내어준 이들을 만나며 나는 ‘불안을 품고 와서 불안을 두고 간다.’ 말했다.
그토록 미웠던 난장을 사랑하게 된 것. 그리웠던 그를 마음에서 보내준 것. 일상이 바빠 자주 연락할 수 없다한들, 부르면 시간을 내 줄 사람들이 있다는게 감사했다. 나는 복된 삶을 살고 있다.
6. 집.
다시 돌아왔다. 집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그동안의 먼지를 털어내는 일.
제주살이와 타국 살이동안 쌓인 짐을 풀고, 묵혀왔던 추억을 버렸다.
침대를 들어내고, 구석 구석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니 하루가 훌쩍 지나버렸지만, 비워내는 시간이 있었기에 나는 머물게 되었지. 결국 변한 건 나였고, 변하지 않았던 건 내 마음이었다.
취업은 한다 말했지만, 여전히 쉬고 싶고, 두려웠던 나는 알바를 찾았다.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고, 합격 소식을 들었지만 죄송하다는 연락을 다시 받은 순간부터. 혹은 한국에 오길 기다렸다 나를 괴롭힌 사람을 마주쳤을 때 나는 괴로워했다.
그럼에도 나를 불러주고 도와준건 태국에서 만난 인연들이었는데 오랜만에 만나 안아주고 싶었다며 내 이야기를 들어준 모모님부터, 나의 진로를 함께 고민해준 룡오빠 덕에 힘든 시기를 잘 버틸 수 있었다. (자주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에겐 너무도 소중한 사람이기에 늘 감사하다 생각하는 사람들)
365일을 매일 함께 하던 NABI 중 노니가 평택으로 이사한 날부터 나의 평택생활엔 든든함이 물들었고, 나를 기억하고 찾아준 인연들 덕에 귀찮아하면서도 늘 감사함을 느낀 나날이었다.
인제 와서 말하지만, 일주일에 두 번은 꼭 만났던 일상이의 도움도 컸다.
덕분에 음주가무의 즐거움도 알게 되고, 아플 때 챙겨준 죽이나 행운의 목걸이라며 면접 날 꼭 챙겨가라고 응원해준 일, 이런저런 고민에 진지하게 맞장구 쳐 준 일까지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부모님의 권유로 교육센터 면접을 보게 된 날. 누가 환경에 환도 모르는 사람을 뽑겠냐 말했지만 나를 불러준 시청분들 덕에 일을 하게 되었다.
돈도 없고, 계획도 없는 환경교육센터를 키우겠다며 강사진을 구하고, 원아를 모집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며 ‘맞다. 나는 일하는 걸 좋아했지’라며 깨달음을 얻었다.
맞지, 나는 무언가 만들고, 키울 때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팔로워 수 7명이던 교육센터 인스타그램을 1,133명의 팔로워로 늘리고, 51개의 카드뉴스를 만든 두 달, 유치원에서 먼저 연락이 오게 하고, 원화 전시를 하는 등의 프로그램을 만든 것은 젊은 날의 내가 할 수 있는 재미난 도전이 아닐까 싶다.
정들었던 직장 동료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선생님과 만나서 한 달. 또 다릌 선생님들과 만나 새로운 식당에 가고, 카페에 가고, 한식뷔페를 가며 직장인의 유일한 낙이 점심시간이라는 말의 의미를 너무도 잘 이해하게 되었다. 전엔 의미 없이 보내는 시간이 아까웠는데, 그 시간이 가장 기대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나. 반짝반짝 빛이 나는 사람이라는 말에 위로받은 나였다. 뭣도 모르는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지 몰라 두려워하고, 아무 사무실에 경리, 사무직 구인란에 이름을 적으며 들었던 회의감과 방황은 오늘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었을까 싶다.
사고가 나고, 이별하고, 아프기도 해보고, 면접에서 떨어지기까지 모든 것이 앞으로 더 잘 지내라고 다독여주는 신호는 아니었을까 느낀 순간 나는 나를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어찌저찌 이건 내 것이다 싶은 직장을 찾았고, 감사하게도 면접을 보게 되었고, 기쁘게도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은 날. 나는 너무도 떨렸고, 너무도 기뻤다.
하루를 공유하고 싶은 사람을 찾고, 나를 안아주는 친구들이 있고, 날 보면 웃음이 나온다고 말해주는 직장동료가 있으니 무적이 된 것 같은 날.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첫 직장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되길 바라며,
2023년 6월 30일 퇴사하는 내가 쓰는 기록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