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lvin Oct 26. 2023

비도 오고 그래서

네 생각이 났어

많은 사람들은 산들바람이 불고 파란 하늘에 몇몇의 뭉게구름이 떠있는 화창한 날씨를 좋아한다. 퇴근 후 근처 공원에서 산책하기 딱 좋은 날씨이기도 하고 혹은 모처럼 한강공원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과 진홍빛 노을을 구경하며 치맥 하기 딱 좋기도 하다. 나 역시 이런 날씨를 매우 좋아한다. 특히 맑은 날씨 저녁시간대 지하철 7호선이 (2호선은 너무 지옥철..) 한강 위를 달릴 때 밖을 내다보는 건 미국에 있는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것들 중 하나이다.


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날씨는 이런 날씨는 아니다. 바로 추적추적 비 오는 날씨이다. 비가 와 길가에 고여있는 웅덩이에 다시 빗방울이 떨어져 물방울이 튀어 오르고, 카페 천막 위에 고인 빗물이 흘러 떨어지고, 문에 빗방울들이 튀어 투명한 보석처럼 몽글몽글 매달려있는 모습들. 비 오는 날에만 보고 들을 수 있는 광경들이다.


왜, 언제부터 비 오는 날을 좋아하게 됐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대학생 때부터 비가 내리는 날에는 던하던 기분도 좋아지고 창밖을 내다보며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 중간고사 기간에 밤늦게까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운전해서 집에 오는 도중 빗방울이 떨어진 적이 있었다. 집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내리려 하는데 그날따라 왠지 빗소리에 더 심취해 있고 싶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찍었던 영상 하나를 공유한다.

비도 오고 그래서 띵곡입니다 여러분


내 핸드폰 갤러리엔 이 영상 말고도 비 올 때 찍은 영상들, 사진들, 비 온 뒤 갠 하늘에 무지개 사진들이 꽤 있다. 부모님께선 다 큰 사내놈이 뭐 그런 걸 찍고 있냐, 주책이라며 뭐라 하시지만, 내가 좋다는데 뭐.


흐린 날씨나 비 오는 날씨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마음속이 우울한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생각한다. 비 오는 날씨를 좋아하게 된 대학생 때 처음으로 슬럼프도 겪어보고 좌절감과 우울감 역시 느껴본 건 맞다. 하지만 우울증을 느낄 정도로 힘들진 않았고 지금은 고난을 이겨내는 나만의 노하우도 있고 나름대로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그럼에도 비 오는 날씨를 여전히 좋아하는 건 어려웠던 시절을 보란 듯이 이겨낸 기억을 회상하는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냥 빗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제일 큰 이유이다. 그때 이래로 같은 이유로 비가 오는 날에 우산을 쓰고 길을 걸을 땐, 나를 포함한 많은 현대인들의 필수품인 이어폰을 귀에서 빼고 우산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와 옆 찻길에서 차들이 빗물을 튀기며 달려가는 소리를 들으며 걷는다.


종종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 유튜브에 빗소리만 몇 시간씩 재생되는 영상을 틀어놓고 자곤 한다. 그럼 오늘은 잠이 너무 안 와서 밤새겠네 했던 순간에도 어느새 눈떠보면 다음날 아침인 경우가 많았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창 밖에서 비가 내리고 있다. 이 빗소리에 힘입어 오늘의 글을 쓸 수 있었다. 앞으로도 맑은 날과 비 오는 날이 적절히 섞여있는 나날들이 계속되도록 기원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야, 오면 얘기해. 술 한잔 하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