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범 Nov 12. 2017

바쁜 날의 단상

정신없이 사는 게 좋지 않은 이유

하루에도 수백 번씩 같은 말을 내뱉는다. '힘들다. 정신없다. 바쁘다. 자살각이다.' 이 정도면 습관이다. 정신병에 걸렸나 의심될 정도다. 바쁜 날을 산다. 할 일이 흘러넘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세 없다. 과제와 아르바이트, 수없이 밀려들어오는 팀플 회의. 


커피는 물처럼 마시게 됐다. 점심도 작년부터 제때 챙겨 먹지 못했다. 며칠 전 애슐리 정도가 다다. 그마저도 몸에 연로를 넣는다는 기분으로 먹었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다. 여담이지만 애슐리 음식은 고무 십는 맛이다. 애슐리 음식보다 같이 간 친구들과 얘기한 게 더 배부르게 했다. 그 친구들에게 감사한다. 


쨋든, 바쁜 사람이 됐다. 자주 듣는 말도 뱉는 말에 기인했다. '왜 이렇게 바빠?', '너무 바빠 보여요.', '바쁜 척 좀 그만해요' 등. 자타공인 열심히 사는 인간이 돼버렸다. 


열심히 산다는 게 뭘까. 놀지 않고 할 일을 빠짐없이 하며 지내는 생활정도로 풀이된다. 다른 사람들이 놀 때 일하며 다른 사람들이 일할 때도 일하는 사람. 단 1분도 쉬지 않고 주어진 업들을 해내는 초인. 손에는 항상 책을 들고 다니며 노트북을 친구처럼 여기는 인물. 우리는 이런 부류를 열심히 사는 사람 내지 바쁜 사람으로 통칭한다. 그리고 지금 내 모습이기도 하다. 


나는 일을 즐기지 못한다. 내 원동력은 흥미보다는 책임감이다. 책임이란 게 무섭다. 사람들은 결과론적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어서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과정보다는 결과에 집중한다. 결과가 좋든 나쁘든 이를 책임을 진 사람에게 돌리는 모습을 자주 본다. 작게는 팀플부터 크게는 나라 경영까지. 니탓 내 탓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봐왔다. 정치인들이 정치공학상 책임 논리를 펼치는 모습도 어느 정도 이해된다. 아마 책임에 적응됐겠지.


내 몸과 뇌를 움직이는 원료가 책임이 되면 정작 중요한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일을 왜 하는지 모른다. 이 팀플은 왜 해야 하지, 저 과제는 왜 하게 됐지. 의무감에 휩싸여 주어진 일을 마구잡이로 하게 된다. 8기 통 폭주기관차처럼 앞으로 달린다. 간이역도 종착역도 없이 멈추지 않는다. 방향을 틀일도 없으니 연료통에 석탄만 넣고 있으면 된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달리는 지도 묻는 것은 사치다. 지금 내가 이 석탄을 안 넣으면 이 고철 덩어리가 멈추는데 말이야. 뒤를 돌아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주마간산이다. 빠르게 달리면 주변을 돌아보기 쉽지 않다. 부모님, 친구들, 은사님, 연인 등. 놓치는 것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연락하는 빈도도 낮아지고 생각조차 나지 않을 때가 있다. 혹자는 '몰입'을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말한다. 동감한다. 내게 주어진 일들 하나에도 집중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더 챙길 수 있을까. 하지만 소중한 사람들이 떠나간 경험을 한 사람들이라면 다른 답을 내놓을 거다. 지금 나도 그렇다. 


실수도 잦다. 깜냥보다 욕심이 많을 경우 드러나는 현상이다. 능력보다 큰 일들을 맡으면 빈틈이 생긴다. 일 하나도 완벽히 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업무를 더 맡으면 문제가 발생한다. 만족할만한 결과를 내놓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이 어그러지거나 주변 사람도 떠날 수 있다. 해결책은 두 가지다. 깜냥을 키우거나 욕심을 줄이는 방법이다. 둘 다 쉽지 않다. 깜냥을 키우기엔 시간이 걸리고 욕심엔 이미 익숙해진 상태다. 노답이다. 


이 노답 폭주기관차를 그대로 둬야 할까. 녹슬거나 폭발하는 미래가 그려질 텐데.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인정이 필요하다. 내가 노답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능력도 안되면서 하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 무엇이든 잘 해낼 것이라고 자만하는 자신을 비판하는 것. 근거 없는 자신감을 발산하는 내 모습을 박살 내는 것. 이 썩어버린 고목을 자를 도끼가 필요하다. 나무가 다시 자라날 진 모르지만 밑동부터 잘라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문제를 인식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이 땅에 존재하나. 모두가 아는 진실이다. 사실 의지의 차이다. 문제를 인식하고자 하는 마음. 문제를 고치고자 하는 생각. 폭주기관차를 잠시 멈출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우리 모두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는 말은 귀에 못이 박히듯 들었을 테다. 이 격언을 안다면 속도를 줄일 필요가 있다. 내게 주어진 일들을 모두 던지라는 의미가 아니다. 몇 달 동안 여행을 떠라는 말도 아니다. 여행을 다녀와도 이 문제가 획기적으로 달라지진 않는다. 


지금 당장 스타벅스로 달려가 카모마일 한잔을 시키자. 따뜻한 기운이 컵 홀더 너머로 전해진다. 바로 마시기엔 뜨거우니, 오른손에 컵을 들고 스타벅스를 나서자. 그리고 걷자. 어제의 나를, 1시간 전 내 모습을 복기하자. 그때의 나는 왜 일을 했을까. 그 말은 왜 뱉었을까. 생각하자. 기차를 멈추는 시간은 몇 달도 몇 년도 필요 없다. 


단 몇 분이면 충분하다. 

작가의 이전글 The story of Naked Hercules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