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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범 Mar 31. 2018

나의 소울푸드 탐색기

나는 왜 청춘식당 김치찜에 빠졌나

베트남에 살았다. 고등학교를 홀딱 보냈다. 사는데 지장은 없었다. 음식이 입에 맞았다. 서브웨이 격인 '반미'도 부침개처럼 보이는 '반세오'도 질리지 않았다.  베트남 음식은 향이 짙다. 냄새가 싫어서 멀리 하는 사람도 있다. 납득하지 못했다. 모든 베트남 음식을 즐겼다. 그중 제일은 '쌀국수'다.  하루 세끼를 먹은 기억도 있다. 일요일 수영 후엔 항상 단골집을 들렀다. 방학 땐 매일 출근 도장을 찍기도 했다.  귀국날 점심도 쌀국수였다.


3년 뒤 다시 베트남을 찾았다. 단골집으로 향했다. 그대로다. 식탁도 젓가락도 양념통도 변하지 않았다. 박제됐던 걸까. 주인아주머니도 안 바뀌었다. 얼굴이 기억난다. 일주일 동안 매일 아침 같은 메뉴를 시켰다. 사흘째 되니 음식이 저절로 나왔다. 기억하더라. 나도 잊지 않았다.


베트남 7군 푸미흥 Pho36 쌀국수. 많이도 먹었다.


대학에서도 쌀국수 같은 존재가 필요했다. 인하대 후문을 뒤졌다. 한 곳 있었다. 막걸릿집이다. 이름도 정겹다. 가시버시다. 부부를 순우리말로 풀어쓴 말이란다. 막걸리는 구수했다. 김치전에 곁들여 먹으면 꿀떡꿀떡 넘어갔다. 막걸리에 한 번, 분위기에 두 번 취했다. 도무지 대학가에 어울리지 않는 술집이었다. 잘못 끼운 퍼즐 같았다.


가게는 초가집처럼 생겼다. 입구는 지푸라기 투성이고 방안은 한지로 둘러싸였다. 자세히 봐야 한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낙서들이 벽을 빼곡히 채워서다. 나도 한 자 보탰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휘갈겼다. 쌀국수를 같이 먹던 친구도 있었다. 한편엔 90학번 낙서도 보였다. 가게 나이가 짐작이 안 간다. 노래로 추측할 뿐이다. 김광석 목소리는 막걸릿집을 항상 가득 메웠다. 이등병의 편지는 30분에 한 번씩 나왔다. 입대 전이라 기억이 난다.  


군대 2년은 길었다.

후문 풍경은 변했다. 자영업 3년 생존율이 10년째 20%니 말 다했다. 정글 같은 대학상권 생태계도 변화에 한몫했겠지. 변화는 빨랐고 체감은 이보다 앞섰다. 1학년 첫 종강총회를 열었던 강대포는 피시방으로 바뀌었다. 이쁜 아르바이트생이 일했던 메사 피시방은 쓰리팝 피시방으로 껍데기가 달라졌다. 한적했던 지하 술집은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된 카페가 됐다. 어떤 술집은 게임장이 됐고, 다시 인형 뽑기 기계로 채워졌다. 편의점에 새들어 와플을 팔던 아주머니는 두 블록 위에 작은 가게를 차렸다.


변하지 않은 장소도 많았다. 시간이 지나도 우직하게 자리를 지켰다. 쪽문 푸드트럭 수니버거 아주머니는 같은 자리에서 핫도그를 팔았다. 가격은 올랐지만 맛은 그대로다. 얼굴만 기억해주시는 닭도리탕집 사장님도 종목을 고수 중이다. 여전히 이름은 기억 못 하신다. 4,000원 밥집 골목은 5,500원 밥집 골목이 됐지만 간판이 그대로다. 준비한 재료만큼만 팔던 와플집 파운드도 골목 구석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많이 좋아했던 여자애가 즐겨 찾아서 기억이 난다.


지푸라기 막걸릿집은 요상해졌다. 구들장에 엉덩이를 지지던 방에는 분식집에서나 볼 듯할 식탁과 의자가 어색하게 자리를 잡았다. 사장님은 벽에 새 한지를 덧댔다. 90년대 낙서는 안 보인다. 음악 취향도 바뀌신 듯하다. 김광석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안 하던 점심 장사도 시작하셨다. 막국수를 팔았고 옛날 도시락을 선보였다. 알루미늄 사각 도시락통에서 2년 전 조각을 찾아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아저씨가 신조어를 사용하는 모습처럼 어색했다. 생존을 위해 태세 전환을 한 걸까. 단순 변심일까. 단골 술집은 그곳에 없었다.


아버지는 베트남에서 귀국하시면 항상 감자탕집을 찾으셨다. 아버지 귀국날 저녁은 높은 확률로 감자탕이었다. 같은 집만 갔다. 유독 그 집을 좋아하셨다. 언젠가 저녁밥도 그 집 감자탕이었다. 평소였으면 묵묵하게 따랐지만 그 날은 달랐다. 다른 밥집에 가자고 떼썼다. 싫다고 하신다. 완고하셨다. 그래서 물었다. "왜 항상 한국에 오시면 감자탕만 드세요", "질리지 않나요". 대답은 짧았다.


한국 오면 이걸 먹어야 돼

심리학 용어 중 '제트 래그 증후군(Jet lag syndrome)'이라는 단어가 있다. 시차로 몸이 피로해지는 증세를 말한다. 아버지에게 감자탕은 제트래그 증후군에 대항하기 위한 음식이었다. 뻘건 국물을 목에 넘겨야 비로소 한국 땅을 밟았다는 기분이실 거다. 같은 감자탕집만 고집하신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영화 <인셉션>에 등장하는 '토템'인 셈이다. 영화에서 토템은 꿈과 현실 사이에서 나침반 역할을 한다. 자신이 현실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시켜주는 장치다. 토템 주인만 그것의 무게나 모양, 종류를 기억한다. 또 한결같아야만 한다. 매번 바뀌면 나침반 역할을 못한다. 변하지 않아야 토템이다.


작년 한 해는 청춘 식당만 찾았다. 인하대 후문 언덕 끝자락에 둥지를 튼 술집이다. 골목이 어두워지는 부근에 간판 불을 켜놓고 있다. 대문 한편에는 한 문구가 한량들을 도발한다.


처음엔 몰랐는데, 정말 그렇다.

김치찜이 당기지 않았던 당시 나도 이 문구에 넘어갔나 보다. 김치찜은 일품이었다. 신김치는 수육을 포근히 품고 냄비 전체를 관장했다. 국물은 구수하면서 매콤했고 달콤하면서 셨다. 소주를 마실 수밖에 없는 맛이다. 소주를 안 마시면 김치찜에게 민폐다. 이 김치찜을 존중한다면 처음처럼을 곁들여 먹어줘야 한다. 그만큼 맛이 기가 막힌다.

그 맛은 1년째 그대로다

세상은 가끔 우리가 물리적인 시간보다 앞서길 바란다. 미래를 예측해야 하고 트렌드를 미리 읽으라 요구한다. 우리는 상대보다 몇 수 앞도 내다봐야 한다. 현재를 살지만 미래에 있어야 하는 넌센스. 세상이 초 단위로 빠르게 변해서 그렇다. 지금도 과거가 되고, 과거의 것은 매력적이지 않다. 침대에 누우면 멍해진다. 세상살이를 제시간에 맞춰 살지 못해서일까. 제트 래그를 달고 살수 밖에 없다.


김치찜은 제트래그를 물리치는 토템이다. 변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다. 변화에 휩쓸리지 않게 돕는 닻이다. 붉은 국물 속 신김치에 소주한 잔이면 제자리로 되돌아온다.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와 취하고, 취해서 비루하게 후배를 부르고, 시덥잖은 말들을 건낸 기억들이 시차를 줄여준다.


내가 가끔 미치도록 김치찜이 먹고 싶어 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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