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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범 May 21. 2018

어느 책에 대한 이야기

오늘, 82년 김지영을 읽었다. 

1999년 미국의 심리학자 다니엘 사이먼스와 크리스토퍼 차브리스는 인지실험을 진행한다. 사이먼스와 차브리스는 학생들을 각각 3명으로 나눠 한 팀은 흰옷, 다른 팀은 검은 옷을 입게 했다. 이후 이들이 서로 농구공을 패스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피실험자들에게는 이 동영상을 보여줬다. 두 사람은 피실험자들에게 흰옷 팀이 패스한 개수를 세 개 했다. 영상이 끝난 후에는 다른 질문을 한다. 


“혹시 선수들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봤나요”     


무주의 맹시(Inattentinal Blindness) 현상을 설명한 보이지 않는 고릴라(Invisible gorilla)  실험이다. 이 실험은 빤히 두 눈을 뜨고도 사실을 보지 못하는 인지 현상을 증명한다.      


투명 고릴라는 놓쳤던 사실들까지 봐야한다는 강박관념을 들게 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은 내가 보지 못했던 이야기들이라 생각했다. 그 사실들을 흘려보내지 않으려했다. 그리고 82년생 김지영을 손에 집었다. 아니, 내가 찾아갔다.      




알고 싶었다. 김지영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사실, 궁금증 보다는 필요에 가까웠다. 친구들이 전해주는 경험들, 뉴스가 보내는 사건들을 이해하려했다. 내 이해의 범주에서는 포용이 되지 않는 부분도 분명 존재했기 때문이다. 우리네 여성의 삶을 담았다는 그 책을 한 자라도 읽으면 그 경험과 사건들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지 상상했다. 나를 실험해보고 싶은 생각이 강했다. 책은 단숨에 읽혔다.      


나는 내내 나를 방어했다. 끝까지 이 이야기들이 ‘픽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되뇌었다. 모든 상황과 대사는 극적 전개를 위해 짜인 각본이라고 반추했다. 이는 사실 내가 다치지 않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무서웠나보다. 아니면 그녀들의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시아버지고 택시기사고 선생님이었을 수도 있어서다. 곧 장 몇 기억들이 스쳐갔다. 책을 읽는 동안 멈추지 않았다.  


책을 덮었다. 내 이해는 오만이고 자만이었다. 자부심이라는 감투를 쓴 이해였다. 그녀들을 이해한다는 사실이 지위고 권력인냥 판단했던 모양이다.     


내가 평범한 40대 남자였다면 끝내 알지 못했을 것이다. 대학 동기이자 나보다 공부도 잘하고, 욕심도 많던 안과 전문의 아내가 교수를 포기하고, 페이닥터가 되었다가, 결국 일을 그만두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특히 아이가 있는 여자로 산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사실 출산과 육아의 주체가 아닌 남자들은 나 같은 특별한 경험이나 계기가 없는 한 모르는게 당연하다.
-p170     


내 삶에 특별한 경험이 있진 않았다. 그래도 김지영의 삶은 내 이해의 범주 밖에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보고도 몰랐던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더 알기를 관뒀다. 이해한다는 노력 자체도 내가 우월하다는 무의식이 발현된 행동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의 대상으로 바라봤다는 태도 자체가 부끄러웠다. 그 지위권을 행사하는 모습이 참 낮게 기억됐다. 앞서 아내 이야기를 뱉어낸 의사는 임신한 직원이 관두자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급하게 일을 그만두는 바람에 리퍼를 결정한 환자보다 상담을 종결한 환자가 더 많다. 병원 입장에서는 고객을 잃은 것이다.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가지로 곤란한 법이다.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 - p175


김지영의 이야기로 내 생각과 가치관이 획기적으로 바뀌진 못할 것이다. 시간이 필요하다. 내 생각들을 나누고, 부수고, 다시 세우는 기간을 갖고 싶다. 그래도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 매 순간 마다 김지영씨를 떠올리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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