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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범 Oct 12. 2018

집 없이 산다는 건

며칠 전부로 공식 홈리스가 됐다.

도로가 꽉 막혔다.


2층짜리 노란 버스나 기네스 트럭들은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다. 승용차와 자전거도 제자리에 섰다. 내 따릉이도 발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유쾌한 상황은 아니었다. 라이딩 흐름이 끊겼다는 사실에 한번, 집에 늦게 도착할 거 같다는 예상에 두 번 눈살을 찌푸렸다. 어쩌면 점심도 때맞춰 먹을 수 없을 듯 보였다. 오후 1시 반은 아침을 굶은 사람에게 꽤나 버티기 힘든 때다. 책상에 두고 온 에너지바을 생각하며 길거리를 점거한 사람들을 원망했다.



시위 현장 모습이다.


사람들은 아스팔트 바닥을 빽빽이 채웠다. 일부는 피켓을 들고 널브러져 있고, 일부는 목청이 터지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무래도 시위인가 보다. 생경한 상황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피켓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구호들을 귀에 담았다. 거주문제였다. 피켓들에는 "HOMES FOR ALL"이나 "Public Housing Not A Landlord State"라고 적혀있었다. 구호는 노골적이었다.


- Housing is a human right. This is why we have to fight.
- When housing right is under-attacked, Stand up and fight.
- Whose city, Our street.


상황은 생경했지만, 감상은 단순했다. 


"듣던 대로 아일랜드는 거주문제가 심각하구나" 나 "규모가 생각했던 것보다 크지 않네" 등 심심한 생각들 뿐이었다. 이들의 미래보다는 점심에 먹을 계란 간장밥이 먼저 떠올랐다. 거주문제는 남일이었다.



100번은 해먹었다. 정말 맛있다.


몇 주전 적당한 위치에 집을 구했다. 렌트비도 이상적이었다. 내 앞길에는 완벽에 가까운 날들만이 가득했다. 그간의 고생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그 고생들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고, 모든 상황을 준비하게 밀어붙였다. 이 나라, 이 동네의 상황에 대해 공부했다. 방을 계약하는 과정을 세세히 살폈고 시세를 빠삭히 익혀갔다. 그렇게 조금씩 더블린을 정복해 나갔다. 반면, 길에 나 앉은 사람들은 충분히 상황을 통제하지 못했다고 여겼다. 외국인인 나도 이렇게 노력하는데, 이들은 그보다 못한다고 넘겨짚었다. 반추해보면, 오판이다.


앞날에 대한 예견은 완벽하게 박살 났다. 이어 붙일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 났다. 거주문제가 나를 덮쳤다. 방에서 나가란다. 장기방인 줄 알았던 방은 사실 단기 방이었다. 지낼 방이 없다. 당장 며칠 뒤 나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짐도 제대로 싸지 못했다. 앞으로 묵을 방도 못 구했다. 총체적 난국이다. 이 땅을 밟은 지 100일도 채 안됐지만, 여태 겪은 일 중 최악이다. 대책이 안 섰다. 전혀 대비하지 못했다. '10월이면 안정적으로 살 수 있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에어백이 필요했지만, 안전벨트조차 메지 않았다. 그대로 5톤 트럭과 부딪혀 허공 어딘가로 튕겨 나가 버렸다. 더블린 정착 초기 들었던 걱정은 엄살이었다. 지금은 정말 좆됐다.  


이렇게 방이 많은데, 내가 살 방은 없다.


막연하게 호스텔에서 지내자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일터 주변 호스텔부터 찾았다. 일에 지장이 생기면 곧장 삶이 흔들릴 거다. 수입이 끊기면 숙소를 못 구한다. 몇 주전 신경 썼던 식(食) 문제는 애교였다. 엉덩이 붙일 장소를 못 구하면 30인치 캐리어에 배낭을 끼고 거리로 나가야 한다. 매일매일 호스텔은 전전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정신 차리고 호스텔부터 돌았다.


숙박비는 살인적이었다.



현재 12인 호스텔에서 지내고 있다.


기존 렌트비에 최대 2배는 내야 했다. 거주기간에도 제한이 있었다. 한 곳에 오래 묵어야 2주다. 용케 저렴한 호스텔을 찾아 금요일까지 예약을 했다. 금요일부터는 주중 가격의 약 3배를 받아서다. 이내 또 다른 호스텔을 구해야 했다. 동시에 장기방도 찾아야 했다. 그런데 매물이 없다. 그나마 있는 방은 기상천외했다. 말도 안 되는 상태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붙여놨다. 가격대가 맞으면 흡사 닭장이나 동물원 같은 방이었다. 쾌적하다고 느껴질 방이면 딱 그만큼 비쌌다.


거주지 정도는 꿰고 있다고 간주했다. 이 분야는 손에 쥐고 충분히 조율할 수 있다고 여겼다. 자만에 가까운 자신감. 제대로 안다고 생각했지만 완전히 빗나갔다. 머리 속으로 이해하는 것과 실제 삶은 꽤나 격이 크더라. 모든 문제를 세세히 안다고 해도 당장 닥치면 이해의 바닥이 드러난다.


제대로 안다는 건 뭘까.


지식과 삶 사이 간극이 좁을 때 제대로 아는 거다. 머리만 크면 방구석 여포를 면치 못한다. 딱 그 정도. 이해하려 노력할 뿐, 그 상황에 닥치면 파도는 꽤나 거세다. 입 발린 소리만 해댄다. 문제해결에는 꽤나 미천하다. 죽은 지식이다. 죽은 지식은 살아있는 현실을 해결할 수 없다. 심심찮게 무언가를 잘 안다고 했던 자신을 반성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잘 안다고 자신할 수 없다. 분명 위험하다, 잘 안다고 단언하는 것은.



사실 나는 잘 모르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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