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든 타의든 침 튀기는 대화가 참 많이 줄었다.
Howaya?
펍의 문은 작은 대화로 열린다. “How are you” 격인 “Howaya?”는 안부인사다. 손님 중 열에 여덟은 인사를 받아치며 랠리를 이어나간다. 곧장 주문을 이어나가는 분들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은 “Grand!”라며 바텐더인 내 안부를 묻기도 한다. “Grand”는 “I’m fine” 정도다.
대화 주제는 다채롭다. 날씨를 욕하거나 하루 일과를 브리핑한다. 이렇게 시작된 대화는 더블린 날씨에 적응해야 한다는 훈수와 날씨에 대한 더블리너들의 셀프디스로 막을 내린다. 이외에 회사 일을 되짚는 손님도, 지난 여행을 자랑하는 손님도 있다. 요즘은 샛노랗게 물든 내 머리에 – 탈색 후 자주 듣는 말은 “I love your hair”다 - 감탄을 늘어놓거나 탈색 약을 추천받기도 한다.
도리어 직접 대화를 걸기도 한다. 혼자 온 손님들이 대상이다. 이른바 혼술족들에게 거는 대화도 바텐더의 미덕이란다. 출처는 불분명하지만 유효한 말이다. 수 분의 대화로 이어지는 경우는 적지만, 대화가 시작되면 그 손님은 기다렸다는 듯 말을 쏟아낸다. 단, 그들의 말을 절반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수다. 짧은 영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담아 멋쩍은 미소로 대화를 끝 맺는다. 한데 마음이 닿았을까. 그들은 단골이 되고 친구가 된다.
대화는 친구를 낳는다. 그중 제일은 토니(Tony)다. 토니는 펍의 마스코트면서 여러 지위를 겸한다. 먼저 보디가드이자 매니저다. 만취했거나 약을 한 손님, 일명 정키(junkie)를 내쫓거나 가게 문제들을 도맡는 해결사다. 일도 도와준다. 오래전 우리 펍에서 일했던 일원이랬다. 그 내공은 손님들을 다룰 때 드러난다. 손님들에게 욕을 퍼붓는다. 기분 좋은 욕일 테다. 열이면 열 모두 웃으며 그와 대화를 이어간다. 손님들에겐 욕쟁이 할아버지 정도일 테지. 나에겐 둘도 없는 친구이자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다. 더블린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는 사람 중 하나다. 함께 기쁨을 나누고 고민을 덜어낸다. 그렇게 예순 살 아이리쉬 아저씨와 친구가 됐다.
토니는 손님들과 가깝다. 모두가 토니를 알고 토니도 모두를 안다. 펍에 오면 바 내부를 쓱 훑거나 맥주 케그가 가득 찬 지하창고를 둘러본다. 나름의 점검이 끝나면 전용 유리잔에 포스터스(FOSTER'S) 라거를 가득 담는다. 잔을 들고 바 중앙 부근 전용석에 앉는다. 불가침 영역이다. 한 번은 그 자리를 뺏으려다 혼쭐났다. 그는 그곳에 걸터앉아 가게 전반을 관장한다.
그런데 토니는 참 이상한 사람이다. 본인 일과를 마치면 매일 밤 열 시 어김없이 펍을 찾는다. 단 하루도 열외가 없다. 그리곤 마감 시간까지 기다린다. 손님이 모두 나가고 마감이 끝나도 집에 가지 않는다. 우리와 한 시간이면 한 시간 두 시간이면 두 시간 수다를 떨다가 문고리를 걸어 잠근 뒤에야 발길을 옮긴다. 심지어 매주 월요일 밤에는 빈 케그통을 지하실에서 지상으로 옮긴다. 다음날 새벽에는 6시쯤 나와 새로운 케그를 받는다. 매주를 그렇게 보낸다. 몇 년은 이렇게 지냈을 거다. 사장님과 어떤 모종의 계약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주인의식을 지녔다.
토니, 피곤하지 않아요?
욕을 한 바가지 얻어먹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단순했다. 행복하단다. 손님들과 만나고 우리와 이야기하는 게 삶의 낙이란다. 자기 계발서에서나 나올법한 대사가 흰머리 아저씨 입에서 툭 튀어나왔다. 머리로만 이해했다. 커뮤니케이션의 힘을 책으로 배워 바닥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그의 대답을 꽤 오래 반추했다.
이해의 실마리는 어느 글에서 등장했다. 낮에는 소프트웨어 매니저로 밤에는 바텐더로 일하는 블로거의 글이었다. 그녀는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러 펍에 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녀에 따르면, 사람들은 사람들과 어울리려(To socialize) 펍을 찾는다. 펍은 술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만남을 파는 장이다. 만남의 광장이다. 동네 사람 모두가 펍에 모여 그날 일을 나눈다. 그날 처음 만난 사람들도 자신의 일상을 대화에 얹는다.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돌이켜보면 그렇다. 단골들은 기분이 꿀꿀할 땐 더블린 현대미술관에 가보라고 추천했다. 내 핼러윈 코스튬이 마음에 든다며 같이 셀피를 찍었다. 기네스를 완벽하게 따르는 방법을 속성으로 알려줬다. 라이브 재즈가 듣고 싶어 재즈바 위치를 물으면 자신의 단골 재즈바를 경쟁하듯 알려줬다. 영어가 늘지 않는다는 내 고민엔 학원을 가지 말고 여기서 배우라며 모두가 비공식 영어 선생님이 돼줬다. 일이 끝나면 마치 자신이 퇴근한 듯 환호하며 자리를 만들어줬다. 친할아버지 부고 소식엔 진갈색 테킬라를 권했다. 진심을 다해 안아줬다. 모두 여기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다.
대화는 한국에서 꽤나 핫한 주제다. 모빌리티 플랫폼 ‘타다’의 성공요인 중 하나로도 꼽힌다. 다만 상황이 반대다. 사람들은 기사가 이야기를 걸지 않아서 타다가 좋단다. 정장 차림의 운전기사는 “차량 온도가 어떤지”, “원하는 경로가 있는지”, “불편한 점은 없는지” ‘정도만’ 손님에게 묻는다. 그 이외에 먼저 말을 거는 상황은 없다. 불필요한 질문이나 정치적 발언 등 기존 택시를 이용할 때 종종 마주치던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돋보인다. 표준화된 탑승 서비스나 쾌적하고 편리한 공간도 한몫했지만, 승객들은 대화 없이 목적지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점도 높이 샀다. 타다는 11월 출시 한 달 새 다운로드 10만 건을 돌파했다. 재 탑승률은 최대 80%에 달한다.
우리는 초연결 시대에 사는 외딴섬들이다. 모두와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지만, 간혹 덩그러니 남아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어진 만큼 멀어져 간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침 튀기는 대화가 줄었다. 살결을 부딪치는 만남도 맥을 같이 한다.
공교롭게도 지난달 흑맥주 기네스는 이번 캠페인 주제를 일명 ‘펍 모드’로 전환하자(Switch to pub mode)로 잡았다. 아무래도 대화가 필요한 시점인가 보다.